이탈리아 여행을 결심하자 목적지는 자연스레 정해졌다. 풀리아. 정승민 작가님의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에서 작가님과 딸이 묵는 지역이 풀리아주의 도시 중 한 곳인 모노폴리(Monopoli)인데, 책을 본 뒤 이탈리아 하면 풀리아(영어로는 아풀리아)라는 공식이 대전제가 돼버렸다. 유럽 하면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아름다운 해변. 내가 상상하는 유럽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풀리아, 네가 궁금하다.
무언가를 공부할 때 아직은 인터넷보다 책이 더 편한 터라 도서관에서 이탈리아 키워드로 검색한 책을 쥐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책을 아무리 찾아도 풀리아주는 잘 나오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은 이미 아말피 해변이 선점해 버렸다. 같은 남부라고 하더라도 아말피는 나폴리 아래 그러니까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국토에서 신반끈 매듭이 있는 위치 정도라면, 풀리아는 동쪽의 장화 뒷굽에 위치해 있다. 지중해가 아닌 아드리아해에 접해있는 풀리아는 가볼 곳이 차고 넘치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항상 후순위 혹은 순위 밖이었나 보다. 하지만 책에서 정보를 못 얻은 만큼 난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평소에도 여행을 가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맛집이나 명소를 조금 꺼리는데 풀리아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반증 아닐까. 물론 유튜브나 유럽여행 카페를 뒤지면 적잖이 풀리아 여행기가 나오지만 아직은 메이저 여행지가 아닌 느낌이었다. 그래, 오히려 좋다.
풀리아가 아주 유명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대표선수를 선발하라면 아마도 폴리냐노 아 마레(Polignano a Mare)가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싶다. 인스타에서 한 때 유명했다던 라마 모나칠레(Lama Monachile) 해변이 이 도시에 있는데, 절벽과 구 시가지 사이에 움푹 들어간 이 아름다운 해변 사진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단숨에 풀리아 지역을 이탈리아 여행의 새로운 선택지로 만들어버린 녀석이다. 그나마 여행책에서도 풀리아주 중에서 폴리냐노 아 마레 정도는 다루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이번에 여행 준비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점점 그 사진에 매료되어 결국엔 이번 여행의 메인 방문지로 격상시켜 버렸다.
수영(이라기보다는 물놀이)을 좋아하는 딸 유라를 위해 관광명소 구경보다는 해변 위주의 일정을 짜기로 했다. 최근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유라에게 바다 수영의 재미를 일깨워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유럽에서 바다 수영을 원 없이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다에서 수영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으니 일단 수영장이 딸린 숙소를 잡기로 했다. 유라는 해외 여행 하면 무조건 베트남의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를 상상하니 그 기대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켜 주기로 했다.
풀리아를 알아볼수록 그곳의 매력이 점점 스며들었다. 특히 아드리아해를 면해서 해수욕장이 정말 많은데 각기 그곳만의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해변에 모래보다는 자갈이 많았고, 기암석과 돌무리로 이루어진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져 있는 곳이 많았다. 아이가 다니기엔 어려운 곳은 배제하고 최대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심이 낮은 곳으로 목적지를 추려 구글 지도에 저장했다. 그래도 비싼 돈 주고 유럽까지 왔는데 바다만 구경할 순 없으니 소도시들도 일단 목록에 올려놨다. 세계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답게 아무리 조그만 도시에도 볼거리가 꽤 있었다. 하루 종일 돌면 분명 유라가 지루해할 테니 도시는 반나절 정도만 돌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여행지 사진을 잔뜩 보고 있자니 벌써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행은 준비단계에서 이미 떠난 거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