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카페와 여행책들을 보며 기본적인 준비를 했다. '다이소에서 살 수 있는 유럽여행 필수 준비물', '유럽 자동차 여행 시 필수 어플' 등을 찾아보며 차근차근 준비물을 사고 어플들을 깔았다. 유럽 안에서도 특히 이탈리아는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아서 도둑 방지 관련 준비물이 많았고, 유난히 짜고 느끼한 현지 음식에 대비해서 전기포트와 컵라면 김치, 컵밥도 많이들 준비하는 거 같았다. 비교적 입이 짧은 딸 유라를 위해서 조그만 기내용 캐리어에는 오로지 식료품으로 채웠다. 동남아나 일본 여행 갈 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까지 챙기려는 여간 귀찮고 피곤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질려버렸던 것은 바로 ZTL이었다. 'Zona Traffico Limitato'의 줄임말로, '차량 통행 제한 구역'쯤 되겠다. 세계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답게 소도시마다 역사적인 유적지가 한 두 개쯤은 있는데, 무분별한 관광 차량의 통행으로부터 유적지와 거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고 한다. 오버 투어리즘으로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 한옥마을 같은 곳도 거주민의 사생활 침해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음, 생각은 하지만......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었다. 잘못 진입하면 적잖은 벌금을 물게 되는데 ZTL 표지판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 나도 모르게 벌금을 물었다는 도시괴담 아닌 괴담이 인터넷에 많았다. 렌트는 포기하고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바로 식은땀이 났다. 캐리어 두 개에 백팩 두 개를 짊어지고 유럽 특유의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누비며 기차와 버스를 탄다? 절대 무리였다. 대도시라면 몰라도 남부 소도시 여행에는 렌터카가 필수였다. 하는 수 없이 ZTL과 관련된 글, 영상을 이 잡듯이 찾아보며 표지판을 익히고 ZTL을 표시해 둔 지도 어플들을 다운받으며 나름의 만반의 준비를 했다.
ZTL은 숙소를 잡을 때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숙소가 ZTL 구역 내에 있다면 렌트한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호텔이나 리조트라면 투숙객이 임시적으로 ZTL 안으로 들어가게끔 해준다거나 ZTL 밖의 공영 주차장에서 호텔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등의 서비스가 있긴 했다. 하지만 내가 가려는 곳들은 레지던스나 B&B였기 때문에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호텔 같은 대규모 숙소가 편하긴 하지만 현지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지역의 특색이 살아있으며, 호스트와의 소통이 중요한 B&B가 더 좋을 것 같았다).
결국 숙소 예약할 때도 ZTL 지도를 옆에 켜두고 비교해 가며 찾아야 했다. 덕분에 도심지 내에 있는 숙소들을 놓쳤지만 반대로 조용하고 느긋하고 평화로운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유자적한 우리의 여행 스타일에는 이런 곳들이 더 어울릴 것도 같았다.
항공편, 숙소, 렌터카까지 모두 예약을 마치고 프린트한 바우처를 탁자에 고이 올려놨다.
장시간 비행기 안에서 볼 책과 영화, 음악 등 모든 걸 챙기고 준비물로 캐리어까지 채워 넣은 다음 거실 한편에 모셔놨다.
이제 출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