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탈리아 남부여행] 로마에 왔지만 온 게 아니다

by 홍윤표

오후 6시 넘어서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바리 공항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바리로 가는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내선을 타야만 한다. 하지만 저녁시간이라 딸 유라가 피곤해할 테고 아내와 나도 장시간 비행에 지칠 거 같아 로마 공항 근처에 1박 숙소를 잡았다. 공항 근처에 비교적 저렴한 B&B가 꽤 있었지만 도보로는 너무 멀고 택시를 타야 하는 거리라 배제했다. 분명 피곤한 상태일 테니 최단 거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공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힐튼 로마 에어포트. 공항 건물에서 자동길로 계속 이동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면 바로 호텔 앞마당으로 이어진다. 안 그래도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여서 숙소에 빨리 들어가 샤워하고 침대에 눕고 싶었다.

20250829_204320.jpg 유라는 언제나 처음 숙소 열쇠를 받으면 자기가 방을 찾겠다고 앞장선다.

간단한 개인정비를 취한 후 방 창 밖을 보니 벌써 어둑해졌다. 이탈리아의 첫 풍경, 그것도 말로만 듣던 로마의 첫 풍경은 아주 밋밋했다. 공항 근처라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호텔 뒷마당 뷰를 보며 잠시 멍 때리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 호텔 조식 대신 한국에서 싸 온 컵밥과 비행기에서 남겨왔던 기내식 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어젯밤 호텔 구경을 제대로 못했기에 체크아웃 전에 간단히 구경을 하려고 로비로 내려갔지만 별로 볼 만한 게 없었다. 아내는 항상 호기심이 많아서 우리가 호기심 천국이라고 부르는데, 이 날도 이상한 호기심을 발동해서 출입금지라고 쓰여있는 문을 열었다가 로비 전체에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황급히 문을 다시 닫으니깐 소리는 멈췄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뒤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체크아웃이나 하자며 방으로 올라갔다.

바리 행 비행기가 오후 12시 출발이라 10시 전에 체크아웃을 했다. 바리로 가는 항공사는 유럽 내 이동할 때 많이들 이용한다는 라이언 에어를 예약했다. 저가 항공인 만큼 수하물 기준이 엄청 엄격하다고 들어서 소수점 이하 단위로 짐 무게를 맞춰놨다. 처음 해보는 수하물 셀프 체크인까지 무사히 마치고 무거운 여행가방들을 떨쳐 버린 뒤 로마 공항을 구경했다. 수많은 외국인과 이탈리아어를 맞이하니 이제야 이탈리아에 온 게 실감 났다. 푸드코트가 보이기에 빵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식당이나 바(카페)에서 음식 주문하는 법도 알아봤는데, 먼저 음식을 정하면 계산대에서 계산을 한 뒤에 그 영수증을 음식 받는 곳에 주면 그제야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한 마디로 계산대와 음식 받는 곳, 이렇게 투 트랙으로 이뤄졌다. 처음엔 이 시스템이 조금 헷갈렸지만 자주 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탈리아에 오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바에서 에스프레소 마시기. 커피에 진심인 이탈리아에서는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머그컵 가득 커피를 마시지 않고, 바에서 선 채로 조그만 에스프레소 잔으로 한 두 모금에 털어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마셔봤는데 엄청 썼다. 한국에서도 커피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으니 에스프레소는 오죽하랴. 설탕을 넣어보니 조금 나았다. 이것도 익숙해지겠지.

KakaoTalk_20251014_163024792_07.jpg 바에서 마시지 않고 자리에서 마시기 위해 테이크아웃을 했더니 에스프레소 사이즈의 귀여운 종이컵이 나왔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게이트로 갔다. 공항이 생각보다 커서 한참 걸어야 했다. 게이트 앞에 줄이 길었지만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이 우리 밖에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긴장됐다.

비행기를 타고 로마를 떠나며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로마, 오긴 왔지만 정말 왔다고 할 수 있나?!

20250830_121342.jpg 바리 행 비행기 탑승하면서 찍은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첫 로마는 안녕이었다
keyword
이전 04화[이탈리아 남부여행] 짝꿍에게 화내면 여행 내내 불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