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도착한 첫 숙소는 소도시 마을에서도 외딴곳에 떨어진 농장형 숙소였다. 넓은 부지에 말, 공작새, 타조, 백조, 염소 등 다양한 동물을 키우고 텃밭에서 직접 키우는 열매과 채소들로 조식을 만드는 멋진 곳이었다. 딸 유라가 좋아하는 동물들과 조그만 수영장도 있어서 구글에서 처음 보자마자 예약했었다. 실제로 가보니 사진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다.
외진 곳에 있었지만 다행히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갔는데, 제법 늦은 시간이라 호스트는 자리에 없었고 대신 딸과 손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손녀는 유라보다 한 살 많았는데 붙임성이 매우 좋아서 우리가 숙소 안내를 받는 동안 유라와 함께 숨바꼭질도 하고 개와 고양이를 보여주며 같이 어울렸다. 우리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환대해 주고 먼저 유라에게 손을 내밀며 마치 자매처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긴장과 피로가 단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방에 짐을 풀고 유라와 손녀 둘이 있는 놀고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 모두 영어가 서툴러서 휴대전화 번역 어플로 대화를 이어갔는데, 알고 보니 손녀는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팬이었다. 블랙핑크와 <오징어 게임>을 좋아하고(근데 오징어 게임은 청불 아니었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유라도 마침 케데헌에 푹 빠져있는 터라 더 반가웠다. 집에서 맨날 케이팝에 맞춰 시끄럽게 춤을 춰서 엄마에게 혼난다며 순진하게 웃었다.
마침 친구가 놀러 오기로 했다며 전화로 그 친구까지 불러서 우리에게 인사시켜 줬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도 케이팝 팬이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두 소녀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는데, 비록 말은 안 통하지만 공통 관심사로 금방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이런 게 바로 문화의 힘이라는 걸까.
가끔은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이 부럽다. 아무런 색안경도 끼지 않고, 상대가 어디서 왔든, 몇 살이든, 무슨 언어를 쓰든, 피부가 무슨 색이든 상관없이 그들 눈에는 그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로 보이는 것 같다. 해맑은 소녀들의 환대 덕분에 이탈리아에서의 첫 숙소의 시작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