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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여행] 자동차여행 일정 짤 때 중요한 건

by 홍윤표

느긋하게 조식을 먹고 고양이 토마스, 개 부기와 좀 더 노닥거리다가 점심즈음에 숙소를 나섰다. 드디어 이탈리아에서의 본격적인 첫 일정을 시작하는 날이다.

처음 여행 준비할 때 도보 일정을 최소화하고 바다와 수영장에서 물놀이 위주로 일정을 짰었는데,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유라 학교에 제출할 교외체험학습 보고서. 아무리 휴양하러 가는 거라지만 명세기 체험'학습'이니만큼 보고서에 적을 만한 사진과 체험은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무리는 하지 않고 하루에 반나절 정도만 둘러볼 수 있는 거리 위주로 일정을 짰다. 우리가 묵는 숙소 근처에는 레체와 오트란토라는 도시가 그나마 가장 크고 볼만할 것 같아서 일정에 넣었다. 딱히 맛집이나 명소를 알아본 건 아니고 그냥 도시만 정해놓았다.

이탈리아 여행 일정을 짤 때 가장 중요했던 건 역시나 ZTL. 차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거의 모든 관광지, 구시가지는 죄다 ZTL 구역 내에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중심지에서 가까운 주차장 중에서 구글 평점이 제일 괜찮은 곳을 구글지도에 저장해 놓았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이동할 때는 무조건 목적지의 주차장을 검색해서 움직였다. 무인 주차장, 유인 주차장, 노상 주차, 건물 내 주차 등 종류가 다양한데 주차요금 결제 방법과 어디가 더 안전하고 좋은 주차장인지 열심히 공부해 갔다(구글링 하다 보니 차 안에 있는 물건을 훔치는 건 물론, 차 자체(!)를 훔치는 도둑도 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무인보다는 유인, 노상보다는 건물 주차장이 훨씬 안전하다고 해서 그런 곳 위주로 저장을 했다.

어쨌든 레체에 갈 때도 미리 저장해 둔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관리인도 있고 넓고 깨끗해서 안심하고 주차할 수 있었다. 주차를 하고 제일 먼저 가까운 곳에 있는 젤라토 가게를 찾아갔다. 이탈리아에 오면 제일 먹고 싶었던 게 카푸치노, 피자, 그리고 젤라토였다. 이탈리아로 신혼여행 갔다 온 지인은 1일 1 젤라토 했다는데, 막상 먹어보니 그저 그랬다. 우리가 맛집을 안 찾아가서 그럴 수도 있고, 한 가지 맛만 먹어서 그런 걸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아내와 나는 "뭐야, 그저 그런데?" 하면서 먹었더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콘 또는 컵 크기에 따라 두 가지 맛을 섞어 먹을 수 있었는데, 우린 첫 주문에 긴장한 나머지 그냥 하나만 골라서 먹은 게 패착이었다. 난 레몬 맛을 먹었는데 너무 셔서 혼났다.


젤라토를 빨리 해치우고 레체 중심가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남부의 피렌체라고 불린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고풍스럽고 멋진 성당과 건물들이 모여있었다. 이제야 뭔가' 이탈리아에 왔구나!'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누런빛을 띠는 유럽 구시가지 특유의 건물과 보도부터 광장에 쫙 깔린 야외 테이블들. 난 유럽의 한 복판에서 허우적대듯이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며 감탄하기 바빴다.

하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유라가 점점 지쳐하는 게 눈에 보였다. 빨리 숙소 돌아가자고 재촉하는 유라를 계속 데리고 다닐 순 없어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내가 생각했던 유럽 구시가지 이미지 그대로였던 레체.

이대로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 유라에게는 말을 안 하고 숙소 근처의 바닷가에 잠깐 들렀다. 풀리아 지역은 기다란 해안선을 따라 아주 많은 천연 해수욕장이 많은데 어제 체크인할 때 숙소 근처에도 좋은 해변이 있다고 들어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타월을 깔고 누운 피서객들을 보니 나도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수영복이나 타월을 챙겨 오지 않아 내일을 기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오후 혹은 이른 저녁에 숙소로 돌아온 우린 테라스에서 전날 마트에서 사 온 와인과 빵, 주전부리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숙소 수영장에 들어갈까도 싶었지만 여기저기 걸은 탓에 몸이 무거워 그냥 방에만 있고 싶었다. 아직 밝은데 숙소 안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이러려고 온 거니깐 뭐 어때 싶었다.

이렇게, 유럽까지 와서도 우리의 게으름은 멈추지 않는다.

밤에 숙소 테라스에서 별을 보며 와인을 마셨다. 이런 게 휴양이지 싶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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