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에 미처 쓰지 못한 레체에서의 점심 식사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레체에서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영업 중인 식당을 검색해야 했다. 이탈리아는 기가 막히게 브레이크 타임을 잘 지키기 때문에 애매한 시간에는 문을 연 식당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식당뿐 아니라 옷가게, 상점 등 거의 모든 가게들이 오후 2,3시부터 5,6시까지는 문을 닫는 걸 봤는데, 책에서 보니 그 시간에는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진정한 워라밸인가... 참 부러웠다).
다행히 구글지도로 영업 중인 식당을 몇 군데 찾아 그중에 손님이 제일 많은 곳으로 갔다. 유라는 입이 짧아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게 파스타인데, 풀리아 지역에서는 오레끼에떼라는 파스타가 유명하다고 한다. 꼭 조그만 동물 귀처럼 생긴 귀여운 모양의 파스타인데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귀처럼 움푹 들어간 모양으로 만든다고 한다. 유라가 처음 먹어보고 무척 맛있었는지 그 뒤로 이탈리아 여행 일정 내내 이것만 찾아 먹었다. 1일 1 젤라토 대신 1일 1 오레끼에떼를 한 셈.
아내와 나는 티본스테이크를 먹었는데, 그냥 고기구이였다. 이것도 책에서 봤는데, 이탈리아는 요리할 때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슨 음식을 먹든 별다른 조미료나 양념맛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또 별미라 여행 내내 음식으로 불평할 일은 없었다. 한국에서 잔뜩 가져온 햇반과 라면이 무색해질 지경.
이탈리아 식당을 다니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먼저, 의외로 메뉴가 빨리 나온다는 거였다. 10년 전 프랑스에서는 자리에 앉아도 메뉴를 보려면 기다려야 했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기다렸고, 계산을 할 때도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등 한 끼 먹으려면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앉자마다 메뉴를 갖다 주고 음식도 생각보다 엄청 빨리 나왔다. 그리고 계산을 테이블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처럼 영수증을 가지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어디선가 이탈리아인들 성격이 우리나라랑 비슷해서 성질이 급하다고 본 것 같은데, 그런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빨리빨리가 익숙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아주 좋았다(계산할 때도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직접 영수증 들고 안에 들어가서 계산하는 게 더 빠르고 편해서 그런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또 한 가지, 무슨 메뉴를 주문하든 식전에 무조건 종이봉투에 빵을 담아서 주는 거였다. 테이블에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소스가 있는 곳에선 그걸 찍어 먹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선 파스타 소스에 찍어 먹었다. 이게 또 별미라 이거 먹는 재미로 식당에 가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항상 음료도 같이 물어본다는 거였다. 아마도 생수도 돈을 내고 사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음료 주문도 받는 것 같았다. 아내는 칵테일이나 와인을 종종 주문했고 운전을 해야 하는 나와 유라는 생수를 주문했다. 이때 내가 이탈리아에서 제일 많이 사용한 단어가 나오는데 바로 '아꾸아 나뚜랄레(생수)'였다. 아마도 영어로는 아쿠아 내추럴쯤 되는 것 같다. 여행 준비하면서 읽은 이탈리아어 책에서 보고 다른 인사말과 함께 외웠는데 이 말을 제일 많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이탈리아에선 물이라고 하면 탄산수와 생수 두 가지를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생수를 먹으려면 무조건 아꾸아 나뚜랄레!라고만 하면 된다. 물론, 영어로 스틸 워터 오어 스파클링 워터?라고 물어보는 곳도 있다. 하지만 영어가 서툰 나는 여기서도 영어를 못 알아듣고 그냥 물 종류 물어보는구나 싶어서 '아꾸아 나뚜랄레'라고 말했다. 영어로 물어봤는데 이탈리아어로 대답하는 동양인을 보고 직원들이 종종 웃으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덧붙여, 와인을 주문할 때도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중 고르라고 물어보는데 레드는 로쏘, 화이트는 비앙코였다. 이건 미처 공부해가지 않아서 그냥 비앙코라고 대답하고 주는 대로 마셨었다.
처음엔 뭐 하나 주문하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너무 부담되고 힘들었는데 조금 지나니깐 익숙해지면서 제법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낯선 여행지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도 여행의 큰 재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