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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여행] 이름도 멋진 아라곤 성

by 홍윤표

오트란토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우린 아라곤 성이라는 오래된 요새성으로 들어갔다(왠지 이름도 멋지다). 오래된 고성 안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난 골목길 사이로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와 상점, 식당이 늘어선 전형적인 유럽의 오래된 마을이었다.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미로 같은 골목을 누비며 예쁜 상점들을 구경했다. 인형을 무척 좋아하는 유라는 여행을 가면 항상 인형을 사곤 하는데 기념품 가게에는 거의 대부분 세라믹과 유리 공예품이 많아서 유라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인형은 찾을 수 없었다.

성벽 너머로 바라본 바다. 멋진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아기자기한 성 안의 골목길

이탈리아는 마을마다 오래된 교회나 성당이 꼭 한 두 곳씩 있었는데 이곳에도 어김없이 교회가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 보면 골목 여기저기에 조그만 간판으로 'duòmo' 혹은 'basìlica'라고 적혀있는 걸 심심찮게 보는데 다 성당을 의미하는 거라고 한다. 왠지 모르게 마을에 들르면 그 마을의 성당은 꼭 봐야 할 거 같은 이상한 강박이 생겨서 언제나 저 표지판을 따라 성당을 구경했었다. 어딜 가나 규모에 상관없이 기본 몇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성당들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우린 딱히 종교가 없지만 거대한 교회나 성당의 규모와 엄숙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경건해졌다. 가끔 절에 가면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지곤 하는데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성당에서도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곤 했다.

오트란토에서 들른 교회 Chiesa di San Pietro. 오른쪽에 관광객들이 구경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다.
아라곤 성 밖으로 나오면 멋진 해안 산책로를 따라 식당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성 구경을 마치니 어느새 5시가 넘었다.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간단하게 커피와 젤라토를 먹기로 했다. 이것도 책에서 봤는데 이탈리아에서 식당에 들어가면 빈자리에 무조건 앉지 말고 잠시 서서 직원이 안내해 주는 걸 기다린다고 한다. 우리도 서서 직원을 기다리며 뭘 먹을까 말하고 있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코리아 밤비나 어쩌고 저쩌고'하면서 직원에게 우리 자리를 안내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밤비노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밤비나는 뭐지 하고 찾아보니 밤비노는 남자아이, 밤비나는 여자아이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한국말하는 걸 듣고 코리안이란 걸 알았나 보다. 이제 유럽인들도 한국말을 구분할 줄 아는 건가 싶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우린 메뉴에 얼음(ghiaccio)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커피를 주문했고 유라는 쿠키가 담긴 젤라토를 주문했다. 우리가 들른 곳은 케이크 가게였기 때문에 다양한 빵 종류가 많았는데, 아내가 구글링으로 맛있는 인기 있는 메뉴를 검색해서 파스티치오토(Pasticciotto)라는 풀리아 지역의 정통 페이스트리를 주문했다. 아내는 그저 그렇다고 했는데 나와 유라는 엄청 맛있게 잘 먹었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어서 오트란토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뭐든 먹으면 서빙하는 직원이 가끔 와서 맛이 괜찮은지 더 필요한 게 없는지 종종 물어보는데, 말이 안 통해서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싫진 않았다. 시원한 오트란토 해협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커피와 간식을 먹으니 여기가 천국이지 싶었다. 해변 산책로를 따라 예쁜 전구와 조명들이 많이 달려있었는데 밤까지 있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쉬웠다. 밤의 이탈리아는 다음에 기약하고 우린 물놀이로 피곤해진 유라를 데리고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해안 산책로에 자리한 케이크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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