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탈리아 남부여행] 내가 누굴 닮았다고요?

by 홍윤표

오늘은 이 숙소에서 체크아웃하는 날이다. 그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던 곳을 떠나려니 많이 아쉬웠다. 특히 매일 아침 산책에 동행해 준 고양이 토마스와 순둥이 개 부기와 헤어지는 게 섭섭했다. 유라도 많이 섭섭했는지 이날 아침은 조식을 미루고 토마스와 부기와 놀기에 여념이 없었다.

떠나는 아쉬움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서 우린 결국 체크아웃 시간인 11시가 다되어서야 숙소를 나왔다.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테오도르가 혹시 가기 전에 타조를 구경하겠느냐고 물어봤다. 이틀 전에 테오도르가 다른 가족들에게 숙소의 동물농장을 구경시켜 줄 때 우리도 중간에 합류했는데, 그때 미처 보지 못한 타조를 보겠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때 완벽하게 구경시켜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나 보다. 우린 다음 숙소로 가야 해서 고맙지만 괜찮다고 말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언젠가 이탈리아에 또 오게 된다면 꼭 다시 오고 싶은 그런 숙소였다.

아침이면 멋진 일출과 함께 숙소도 잠에서 깨어난다. 멋진 숙소를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가 계획한 이탈리아 동남부 여행 동선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식이었다. 다음 목적지인 알베로벨로로 가기 위해 우린 북으로 향했고 며칠 전에 방문했던 레체를 지나 더 위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점심도 먹을 겸 브린디시라는 도시에 가보기로 했다. 공항이 있을 정도로 제법 규모가 큰 도시인데 고즈넉한 성과 자연항이 있는 멋진 도시다. 잔잔한 아드리아 해를 따라 멋진 해변산책로가 있고 그 위로 멋들어진 식당과 카페가 즐비했다. 주차를 하고 어디로 갈까 검색해 보니 'Museo Archeologico Francesco Ribezzo'라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어 그리로 가보기로 했다. 오래전 바다에서 발견된 석상들과 유물 그리고 예술품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입장료는 무료인데 사람이 거의 방문하지 않아 매우 조용했다. 조그만 안뜰도 있어서 도시를 구경하다가 잠시 쉬었다 가기에도 좋았다. 바로 옆에 있는 성당도 구경하고 오래된 골목길을 거닐다 슬슬 배가 고파서 다시 해안길로 나와 적당해 보이는 식당에 들렀다.

잔잔한 아드리아 해를 품에 안고 있는 도시 브린디시
Museo Archeologico Francesco Ribezzo 입구. 여러 유적들이 있는 전시장을 나오면 예쁜 안뜰이 반겨준다


해안도시에 왔으니 해산물을 먹어봐야지 싶어서 해산물과 역시나 유라 전용 오레끼에떼를 주문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새우구이와 리코타 치즈가 첨가된 오레끼에떼를 골라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역시나 아내는 아페롤 스프리츠를 주문했다. 여행 내내 가는 식당마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 이 음료가 올려져 있었는데 가히 이탈리아 국민 음료가 아닐까. 나도 운전만 아니었다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밍밍한 생수로 달래야 했다.

잔잔한 바다와 멋진 보트를 바라보며 맛있는 해산물을 음미했다. 우리가 주문한 건 해산물 모둠 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역시나 소스나 조미료의 맛보다는 해산물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을 다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주인아저씨가 따라 나오더니 영어로 말을 걸었다. 대충 넷플릭스 드라마 <워킹 데드>를 아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얼마나 재밌게 봤으면 처음 보는 외국인한테까지 추천하려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물론 안다고 대답했다. 시즌 9까지 보고 중도 하차했지만 어쨌든 나도 재밌게 본 드라마니까. 그러자 그 아저씨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뭔가를 검색하며 나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드라마에 나왔던 스티븐 연 배우 사진이었다. 나랑 무척 닮았다고, 그 얘기하고 싶어서 따라 나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스티븐 연은 나도 무척 좋아하는 배우라 매우 기뻤지만 그가 훨씬 잘 생겼다고 웃으며 손사래 쳤다. 아내도 옆에서 말도 안 된다고 웃었다. 덕분에 브린디시에서의 여행이 정말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스티븐 연 배우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시원한 해변 산책로에 자리한 식당, 음식도 매우 훌륭했다.

식당을 나와 브린디시 시내를 조금 걸었다. 한적한 오후 시간이라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도 많이 없었다. 시내는 방금 지나온 오래된 골목길과는 사뭇 다른 현대적인 휴양도시 느낌이었다. 한적한 오후의 햇살을 잔뜩 머금은 도시를 천천히 구경한 뒤 우린 브린디시에서의 좋은 추억을 안고 두 번째 숙소가 있는 알베로벨로로 북상했다.


keyword
이전 13화[이탈리아 남부여행] 숙소에서만 뒹굴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