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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여행] 스머프 버섯집에서 지내보자!

by 홍윤표

브린디시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다음 숙소로 이동했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알베로벨로 지역의 건축양식으로 유명한 트룰로 형태로 지어진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독특한 건축 양식은, 고깔모양의 지붕과 하얀색 벽돌로 지어졌으며 버섯같이 생긴 귀여운 모양 덕분에 스머프 마을의 배경으로도 알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짓게 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가설은, 아주 옛날에 가옥마다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쉽게 짓고 쉽게 부술 수 있는 형태로 지었다는 가설이다. 과도한 세금 부과를 피하기 위한 서민들의 꼼수 혹은 지혜가 오늘날 독특한 문화양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알베로벨로에 가까워질수록 트룰로 형식의 가옥들이 점점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트룰로의 유명세에 따라 관광객을 위해 많은 숙소들이 트룰로 모양으로 지어진 것 같았다. 우리가 가는 숙소처럼.

우리를 맞이한 호스트는 중년의 이탈리아 여성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며 이탈리아어로 "미 끼아모 윤표 홍"이라고 말하니 놀라워했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기본적인 말은 그 나라 말을 사용하는 게 어느 정도 기본이라고 생각했기에 여행 전에 조금 연습했는데, 막상 칭찬을 들으니 나름 뿌듯했다. 하지만 호스트는 내가 이탈리아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했는지 숙소 설명을 이탈리아어로 할지 영어로 할지 물어봤다. 난 당황하며 이탈리아어는 전혀 못 하니깐 영어로 해달라고 말했다. 숙소는 트룰리 형태의 객실이 대 여섯 개 정도 모여있는 규모로 한쪽에는 넓은 잔디밭과 수영장이 있었다. 그리고 독특한 건 조식 식당이 따로 있지 않고 매일 아침에 예쁘장한 소풍 바구니에 갖가지 빵과 치즈, 음료 등을 담아서 객실 앞에 놔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다음 날 먹을 조식을 선택할 수 있는 쪽지가 들어있어서 매일 뭘 먹을지 고민하며 적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간단한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우리가 묵을 숙소로 가는데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야옹거렸다. 전 숙소에서 개냥이 토마스와 헤어지는 게 무척 아쉬웠던 우리는 새로운 숙소에서도 고양이가 있는 걸 알고 무척 신났다. 이 고양이도 토마스 못지않게 사람을 잘 따르는 순둥이였는데, 우리가 일정을 마치고 오거나 수영장에서 놀다가 객실로 갈 때면 항상 어디선가 나타나 졸졸 따라와서 결국 객실 안에까지 들어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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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룰로 형태의 객실. 개별 객실마다 부엌과 방 2개 화잘실 1개가 딸려있다. 외형 만큼이나 내부도 매우 독특한 구조였다.
20250905_080243.jpg 매일 아침 객실 앞 야외테이블로 배달되는 조식. 바구니에 들어있는 메뉴에 다음날 먹을 음식을 고르고 넣어놓으면 다음날 배달되는 시스템이다.

객실 내부는 일자형 통로였는데 현관과 부엌을 지나면 침실 두 개가 연이어 나오고 맨 끝에 화장실 겸 샤워실이 나오는 구조다. 벽과 천장이 벽돌로 되어있어 마치 오래된 집이나 동굴에서 지내는 느낌이 들었다. 뭣보다 좋은 건 커다란 냉장고와 어메니티로 준비된 갖가지 과일잼과 누텔라 초콜릿 잼, 캡슐 커피. 준비된 걸 다 먹어도 호스트에게 말하면 더 갖다 준다. 한국에선 부담스러워서 못 먹던 누텔라를 마음껏 빵에 발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나 유라의 최대 관심은 수영장. 전 숙소보다 훨씬 큰 수영장에 유라는 무척 흥분했다. 짐을 풀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는 이미 서너 명의 투숙객들이 선베드에 누워 쉬고 있었다. 넷플릭스로 인어가 나오는 만화에 푹 빠진 유라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인어 놀이를 하자고 재촉했고 우린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다른 손님들마저 다 가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수영장에서 나왔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숙소다. 여행을 다녀오면 어딜 갔다 왔는지 보다는 어디서 지냈는지가 더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호텔보다는 그 나라, 그 지역의 특색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레지던스나 B&B를 찾곤 한다. 여기도 비록 수박 겉 핥기 식으로나마 트룰로를 체험할 수 있고 무엇보다 유라가 좋아하는 수영장이 딸린 곳이라 선택했는데 매우 만족이었다.

같은 이탈리아지만 얼마 전까지 있었던 레체와 오트란토와는 또 다른 느낌의 도시 알베로벨로. 여기선 어떤 체험을 하게 될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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