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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여행] 이탈리아 결혼식을 구경해 봤다

by 홍윤표

알베로벨로는 내가 이탈리아 동남부 여행을 계획하면서 폴리냐노 아 마레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방문하기로 결심한 곳이었다. 버섯모양의 트룰로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마치 스머프 마을을 떠올리는 트룰리(트룰로의 복수형이라고 한다) 마을 사진을 봤을 때 꼭 가보기로 결심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동안 바다수영과 물놀이를 하면서도 제대로 빨래를 못 한 수영복들과 입었던 옷가지들을 몽땅 숙소 세탁기에 돌리고 오니 전날 우리를 반겨줬던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졸졸 따라왔다. 전에 묵었던 숙소의 고양이 토마스는 개냥이처럼 사람을 잘 따라 산책할 때 졸졸 따라다녔지만 선은 잘 지켜서 절대로 우리 방으로는 올라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곳의 고양이는 토마스보다 더 개냥이라서 그냥 방으로 총총거리며 들어왔다. 문을 닫으면 문 바로 밖에서 귀엽고 애처롭게 냐옹거리는 탓에 심장어택을 당하곤 했는데, 문을 열어주면 어느새 침실까지 깊숙이 들어와서 밖으로 나가자고 얼쩡거렸다. 덕분에 유라는 고양이의 야옹 소리에 기분 좋게 잠에서 깨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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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우리 곁을 졸졸 따라다녔던 녀석. 문을 닫고 객실로 들어가면 항상 저렇게 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사라지곤 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따로 이름은 없다고 한다.

어쨌든 세탁기를 돌린 옷가지를 볕이 잘 드는 객실 밖에 널어놓고 우린 알베로벨로로 출발했다. 차로 약 16분 정도밖에 안 걸려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애초에 우리가 봐둔 주차장을 구글맵에 찍고 갔는데 애석하게도 문을 닫았다. 우리와 같이 그 주차장으로 향하던 차들도 당황해서 좁은 골목에서 조심조심 차를 돌렸고(바로 앞에서부터 ZTL 구역이라 우린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유턴해야 했다) 우리도 내가 차를 돌리는 동안 아내가 옆에서 급하게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주차장을 검색해서 그리로 갔다.

주차장에는 우리와 같은 관광객 차뿐 아니라 캠핑카들도 많이 보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캠핑장과 캠핑카들을 꽤 봤는데, 방송인 알베르토가 쓴 책을 보니 이탈리아인들은 캠핑을 엄청 좋아해서 여름에는 정기적으로 캠핑카를 타고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고 한다. 별도의 캠핑장이 아니더라도 화장실과 수도시설이 있는 일반적인 주차장에서 하루 주차 정액권을 끊고 차박을 하는 차들을 많이 봤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캠핑카를 빌려서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베로벨로는 이탈리아 동남부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라서 그런지 좁은 골목길에 관광객들이 빼곡했다. 한적한 곳만 다니다가 관광지다운 관광지는 처음 방문하는 우린 정신없이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 걸으면서 마을을 구경했다. 트룰로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 있었고, 골목길은 마치 미로처럼 이리저리로 뻗어있었다. 길에는 기념품 샵과 바, 식당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어딜 가나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거주구역도 있는 반면, 관광객들을 위한 상점들만 모여있는 구역도 있는 것 같았다. 하얀 벽돌로 지은 동글동글한 집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자니 속된 말로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커다란 광장을 지나 Church of Saint Lucia라는 교회 앞의 뷰포인트로 갔다. 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 과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우리도 그 사이에 끼어 겨우겨우 사진을 찍고 분수대에 앉아 좀 쉬며 이제 어디로 갈까 구글맵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근처에 인형가게가 있는 걸 알게 되어 그리로 갔다. 인형 가게라기보다는 영유아 물품을 파는 곳이었는데 다행히 유라가 마음에 들어 하는 하마 인형이 있어서 그 녀석을 사고 밖으로 나왔다. 덕분에 인파에 치이며 여기저기 걷느라 지쳤던 유라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20250904_104813.jpg 마을 초입에서 본 성당. 역시 트롤로 형태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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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예쁜 공예품과 린넨 소재의 옷들을 파는 상점이 많았다. 우리도 이 곳에서 조그만 트룰로 집모양 장식품을 샀다.
KakaoTalk_20251014_172725796_16.jpg 교회 앞의 뷰포인트에서 찍은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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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은 예쁜 화분들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서 동화 속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형을 사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마을을 돌며 본 성당과 교회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어김없이 호기심이 발동한 호기심 천국 아내가 종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자 커다란 성당이 나타났는데 거기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성당 앞에 양복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한쪽에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뭐지 하면서 성당으로 들어가 보니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성당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대신 피로연을 오랫동안 연다고 책에서 봤는데, 실제로 결혼식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결혼식에 실례가 될까 얼른 나온 뒤, 우린 사람들에 뒤섞여 결혼식이 어떻게 끝나는지 구경하기로 했다. 하객 말고도 우리처럼 결혼식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조금 후에 신랑 신부가 성당 앞 계단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쌀을 던졌다. 결혼식에서 쌀을 던지는 건 다산과 번영을 기원하는 풍습이라고 한다.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짓궂게 쌀을 엄청 던졌고 심지어 삽으로 퍼서 뿌리기도 했다. 신랑 신부는 그 뒤로 한참 동안 성당 앞에서 하객들과 인사를 한 뒤 마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판 남이지만 조용히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1758359994-67050200.jpg 신랑 신부가 식을 마치고 성당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이 쌀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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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중인 성당 내부. 하객들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밖에는 신랑 신부가 타고 갈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올해는 우리 부부의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주년을 기념해서 온 건 아니지만, 낯선 땅에서 낯선 이들의 결혼식을 보니 우리의 결혼 생활 10년을 뒤돌아보게 됐다. 우리도 저처럼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첫걸음을 뗐었지.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들도 10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걸 이뤄냈다. 비록 거대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작은 일상들이 모여 큰 행복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라라는 소중한 보물을 품에 안게 됐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그들도 아니, 세상의 모든 시작하는 연인들 모두 앞길에 행복과 기쁨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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