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체를 다녀온 다음날에는 숙소 근처의 다른 도시인 오트란토에 가기로 했다.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토마스, 부기와 산책을 하고 아침을 먹고 방에서 뒹굴다가 나오니 이미 11시가 넘었다.
약 30분 남짓 거리의 오트란토는, 구두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로 치면 뒷굽에서도 거의 끝에 위치한 도시다. 그리 크지 않은 항구도시인데 얕고 투명한 오트란토 해협을 마주한 멋진 공원과 식당들이 줄지어서 있고 그 옆에는 커다란 고성과 그 안에 이리저리 난 조그만 골목길이 무척 예쁜 곳이다. 레체와 마찬가지로 미리 검색해 둔 바닷가 근처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다로 갔다. 수영복은 미리 갈아입은 상태였다. 바닷가로 가니 그리 넓지 않은 해안가에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탈리아 동남부 해안은 커다란 바위가 듬성듬성 자리한 게 특징인데, 이곳은 그나마 넓은 모래해안이 있어서 유라와 함께 놀기에 적합해서 미리 골라둔 곳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우리도 비치타월을 깔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바다는 무척 따뜻하고 매우 투명했다. 물고기도 많아서 유라가 참 좋아했다. 얕은 수심으로 넓게 퍼져있어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한 곳이었고 그래서인지 가족단위 피서객이 많았다.
유라는 원래 겁이 많아서 물속에 머리를 담그는 걸 전혀 못했는데 약 한 달 전쯤부터 시작한 수영 덕분에 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됐고 그래서 바다에서도 재밌게 놀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물에 얼굴 담가보라고 하면 절대 싫다고 하던 녀석이 학원에 다니더니 금방 물에 친해진 게 참 신기했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건가.
워낙 이탈리아 소매치기, 도둑에 대한 글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모래밭에 놔둔 가방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래서 방수가방에 휴대전화를 챙겨서 물로 들어갔는데 수영을 하고 싶어도 휴대전화가 신경 쓰여 제대로 놀지 못했다. 결국 아내와 내가 번갈아가면서 휴대전화를 들고 물놀이를 했는데, 영 불편했다. 결국 난 30분 정도 놀고 아내와 유라를 남겨놓고 휴대전화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멀리서 둘이 노는 걸 지켜보며 일광욕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부끄러워서 래시가드를 입고 있었을 텐데, 여기서는 다들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고 있어서인지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어서 나도 수영복 바지만 입고 몸을 태웠다.
누워서 이탈리아인들을 지켜봤는데, 거의 대부분 각자 파라솔을 들고 와서 열심히 파라솔을 모래에 박고 자리를 잡았다. 파라솔을 갖고 다니는 게 일반적이구나 생각을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둘러본 해변가 주변 상점에는 수영복과 아쿠아슈즈, 그리고 파라솔이 항상 비치돼 있었다. 나도 하나 정도 사둘까 하다가 한국 올 때 짐이 될까 봐 그만두었다.
아내와 유라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배고프다며 바다에서 나왔다. 우린 대충 수건으로 몸을 닦고 다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어디선가 풀리아 지역이 문어 요리가 유명하다고 들어서 문어 버거를 시켰고 역시나 유라는 전날 레체에서 반한 오레끼에떼와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다.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식문화답게 문어버거도 별다른 소스가 없이 잘게 썰은 문어와 올리브오일, 야채, 약간의 레몬 소스 정도만 들어간 것 같았다. 아내는 맛이 심심하다고 했는데 원래 문어를 좋아하는 난 맛있게 먹었다. 유라도 앞에서 오레끼에떼를 열심히 먹었다. 이탈리아 와서 제일 걱정된 것 중 하나가 입이 짧은 유라의 끼니였는데, 아직까지 매우 잘 먹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아내는 음료로 아페롤 스피리츠를 주문했는데,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다 보면 노상 식당에서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 음료를 마시는 걸 정말 많이 봤다. 아내는 살짝 미에로 화이바 맛이 난다고 했는데 꽤 맛있었는지 여행 내내 가는 곳마다 주문했다.
기대하던 첫 바다수영을 하고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일광욕도 하고 시원한 바다 바람을 쐬며 느긋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더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런 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조금 무리해서 여기까지 오길 잘했구나, 문어 버거를 씹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