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조그만 하천이 있습니다. 이 하천길을 죽 따라 걷다 보면 전에 살던 동네까지 이어지죠. 그 동네에 살 때 딸이 태어났는데, 딸이 어렸을 때 이 하천길로 산책하러 종종 나갔었어요.
딸이 다섯 살 때 하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넌 적이 있습니다. 아이의 조그만 손을 잡고 다리 건너는 걸 도와줬죠. 하지만 성격이 급한 전 저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했나 봅니다. 아이가 제 보폭을 못 따라잡고 그만 발 한쪽이 하천에 빠져버렸죠. 다행히 깊진 않아서 발목까지만 적신 걸로 끝나지만요.
생각해 보면 지금도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제가 항상 앞서 나가고 아이는 뒤따라옵니다. 서로 잡은 손을 길에 늘어뜨려 앞뒤로 걷는 셈이죠. 저도 모르게 그렇게 걷다가 중간에 걷는 속도를 줄이긴 하지만,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결국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따라오곤 해요.
딸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난히 꽃과 곤충을 좋아해서 길을 가다가도 예쁜 꽃이 피었거나 바닥에 조그만 벌레가 기어 다니면 멈춰 서서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전 그 옆에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기 일쑤고요.
그렇게 전 앞만 보고 걷습니다. 반면에 아이는 사방을 보면서 걷지요. 같은 길, 같은 거리를 걸어도 아이의 눈에 들어오는 게 훨씬 많을 겁니다. 전 그냥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선을 따라 걷는 것과 다름없겠지요.
왜 전 항상 마음이 급하고 걸음이 빠를까요. 아이는 왜 항상 천천히 걷고 주변에 관심이 많을까요. 왜 우리의 보폭은 항상 어긋나는 걸까요. 제가 좀 더 아이의 보폭에 맞춰 줄순 없는 걸까요.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 되자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제 걸음은 또 빨라집니다. 아이를 재촉하고 다그치는 걸 그만두고 아이의 호흡과 보폭, 속도에 맞춰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이 세상에서 아이가 안전하게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기다리고 도와주는 그런 아빠가 되자고,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