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시간은 우리보다 빨랐다. 아내가 임신 24주였을 때 정기검진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우린 별다른 고민 없이 아이를 낳기로 했다.
검진을 통해 부모와 아이의 시간속도가 다를 경우,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포기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러지 않았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어렵게 얻은 귀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태어난 후 좀 더 정확하게 아들의 시간속도를 알 수 있었는데, 정밀검사 결과 정확히 우리보다 5배 빨랐다.
우린 5배 빠른 시간대의 커뮤니티에 아들을 보내는 대신, 정상 시간의 커뮤니티에서 우리와 함께 있기로 결정했다.
5배는 생각보다 빨랐다. 출산 후 일 년이 지났을 때 아들은 이미 다섯 살이었고, 우린 하루가 멀게 성장하는 아들의 옷을 매번 구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학교는 편의를 봐주어 학기와 상관없이 아들을 진학시켜 줬고,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한 지 일 년을 조금 넘겨 중학교로 갔다.
당연히 친구들을 사귈 수가 없었고, 그래서 아들은 늘 힘들어했다.
우린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 고심 끝에 5배 빠른 시간대의 커뮤니티에 아들을 보내기로 했다.
마냥 슬프기만 했던 우리 부부와 달리 아들은 두려우면서도 흥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린 떨어져 지냈다. 물론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볼 수 있었지만 커뮤니티 간의 거리는 꽤 멀어 자주 가기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들을 보러 갔다 올 때면 아내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고, 나도 하루가 다르게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함께 하지 못 한 시간의 안타까움에 가슴이 사무쳤다.
그렇게 아들을 보낸 지 2년.
우린 삼십 대 중반이 되었지만 아들은 벌써 대학 졸업반이었다.
졸업식 날 사진을 찍기 위해 나란히 섰더니 아들은 어느새 나보다 한 뼘이나 더 컸다. 아들은 그쪽 커뮤니티에서 건축 설계사가 되었고, 자신과 똑같은 시간속도를 가진 동료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 사진 속의 우리 넷은 마치 친구들 같았다.
결혼 후에도 우린 아들을 보러 자주 갔지만 사회생활이 바빠진 아들의 얼굴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졌고, 가끔 볼 때면 나보다 더 많아진 아들의 새치가 눈에 밟혔다.
아들이 결혼한 지 우리 시간으로 3개월이 지났을 때, 손주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아들은 손주가 여자아이라는 말과 함께 시간속도도 말해주었다.
손녀는 우리와 같은 시간속도를 갖고 있었다.
아들 부부는 우리와 같은 선택을 했고, 손녀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결국 그때가 왔다.
아들은 우리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다. 나보다 키가 컸던 아들은 점점 나보다 왜소해졌고, 주름은 많아져갔다.
내가 마흔이 됐을 무렵에 아들은 은퇴를 했다.
그리고 손녀를 우리에게 데려왔다. 손녀는 아직 일곱 살이었다.
그 후 우린 아들과 며느리를 먼저 보냈고, 손녀를 키우고 있다.
손녀는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아들과 함께한 시간은 19년이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시간이 아들에겐 평생이었을 것이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그 슬픔이 두려워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들은 우리에게 그 슬픔의 5배가 넘는 기쁨을 주었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