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미뤄두었던 축의금 봉투 정리를 했다.
대부분 아버지 손님들이었고 대학 동기들과 동네 친구들, 직장 동료들이 다음으로 많았다.
아내와 함께 각자의 손님들을 대조해 가며 분류작업을 하고 이름과 금액을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많았던 봉투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드디어 하나만 남았을 때 우리 부부는 조금 당황했다.
둘 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우린 부모님들께 물어도 보고 형제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누구도 마지막 봉투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그 이름도 노트에 적고 다른 봉투들과 함께 서랍 속에 넣었다.
그렇게 그 봉투에 대해 잊었고, 2년이 지난 뒤 아내는 딸을 출산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난 핏덩이 아이를 돌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딸은 조금씩 자라면서 엄마를 궁금해했고,
난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딸은 계절보다 빨리 자랐고 언제나 내 기대를 앞지르며 성장했다.
그리고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딸은 유명한 물리학자가 되었고, 큰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며 외국으로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얼마 후 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병원에 있기보다 아내와 딸과 함께 했던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홀로 집에 남아 방을 정리하다 오래된 봉투를 발견했고, 그것은 아주 오래전 아내와 함께 정리한 축의금 봉투였다.
거기엔 끝내 출처를 밝혀내지 못 한 봉투가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다시 확인했을 때, 그땐 알지 못했던 이름을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그건 딸의 이름이었다.
언젠가 딸이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무슨 연구를 하게 됐는지 설명해 주면서 상대성 이론과 초광속 입자 등에 대해 얘기해 준 기억이 났다.
전형적인 문과 출신인 난 그때 딸이 해준 이야기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단순히 봉투의 이름과 딸의 이름이 우연히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딸이 수십 년 전 그때 아내와 나를 보러 온 것이라고 믿고 싶다.
딸을 혼자 남기고 떠나는 발걸음이 그래야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혼자 남은 딸은 언제고 우리를 보러 올 수 있고, 우리 셋은 그렇게 과거의 시간 속에서나마 함께 할 수 있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