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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Aug 11. 2023

엄마는 나의 ‘부캐’다.

‘엄마’인 나에게 하는 다짐


        


시인도 엄마도 모두 나라는 사람의 소중한 ‘부캐’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시인 조혜은







          

나는 13년 차 아나운서이자 2019년 첫 책을 출간했고, 2020년 생애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새 생명에 대한 환희와 함께 내 몸뚱이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난생처음 해보는 신생아 육아는 당황스럽고 힘겨웠으며, 부모라는 이름의 엄청난 책임감은 나를 짓눌렀다. 매일 이름 모를 감정들이 쏟아져 할 수 있는 건 함부로 우는 것뿐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출산과 출생은 어쩌면 주어만 다른 같은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나도 엄마로 태어났다. 배 밖으로 나온 아이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 낯설 듯 엄마가 된 내가 마주하는 세상도 다 생소했다. 그동안 이미 살아왔다고 익숙한 삶이 아니었다. 처음 맡아보는 엄마라는 직책은 어디서 배우고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웠다. 아픈데 참아야 했고, 고단하고 우울한데 견뎌야 했으며, 처음인데 잘해야 했다. 아이 앞에 엄마는 그런 존재여야 했다. 차근차근 익히고 천천히 익숙해질 수도 없는, 배 속의 아이가 나오는 순간 한꺼번에 되어야 하는 게 엄마였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내 앞에 놓인 너무나 작고 거대한 아이는 나를 짓누르고, 심장 뛰듯 반복되는 양가감정은 자책과 원망, 환희와 우울을 동반했다.


육아란 그런 것이었다. 끊임없는 감정의 모순이 반복되는 일. 기꺼이 하면서도 기쁘지만은 않은 일. 내 모든 걸 내어 주면서도 내가 사라질까 두려운 일. 그것이 바로 ‘엄마’라는 일이었다.    






내 모든 걸 내어 주면서도
내가 사라질까 두려운 일.
 
그것이 바로 ‘엄마’라는 일이었다.  





엄마가 된 나는 기쁘고 슬펐다. 행복하고 불행했다. 아이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육아는 너무나 지치고 고단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태어나 가장 열심히 살고 있고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지만, 매번 최선을 다해도 죄스러웠다. 시간은 분 단위로 쪼개 써도 항상 부족했고, 체력은 출산 후 단 하루도 남아있던 적이 없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나를 돌보지 못할 때면 기운 빠졌다.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나도 소중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도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자꾸만 마음은 책상과 책장 사이를, 엄마인 나와 아나운서와 작가인 나 사이를 자주 오갔다. 때로는 너무 힘겨워 내 몫의 돌봄도 미루고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시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도 아이는 너무 예쁘잖아요’라고 말하는 그 순서를 한 번쯤은 바꾸고 싶었다. ‘아이는 예쁘지만 나는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말이다. 예쁨이 힘듦을 다 덮을 수 없고, 힘듦이 예쁨을 덜하게 만들지도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아나운서에서 퇴근하고 육아 출근을 하며 엄마가 된 후, 아이가 잠들고 나면 피곤과 잠을 쫓아내고 깜깜한 새벽 노트북 앞에 앉아 작가가 되었다. 고단하고 고달픈 일이었지만 나와 엄마들에게 필요한 기록이 될 거라 믿으며 기꺼이 애써서 썼다.    

 

세상엔 엄마를 향한 평가와 응원, 격려와 충고가 동시에 쏟아져 힘이 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희생과 헌신, 무조건과 당연함. 유독 엄마 앞에 찰싹 달라붙은 이런 시선이 한 인간을 좌절하게 한다. 모성애 넘치는 여성, 완벽한 엄마라는 판타지를 만들어 사회는 양육과 돌봄을 개인에게 짐 지우고 물러나 있었다. ‘특정 사회에서 사람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그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나와 엄마들에게 필요한 기록이 될 거라 믿으며 기꺼이 애써서 썼다.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의 ‘일부’가 엄마가 되었다. 임신, 출산 후 엄마라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고 책임감 있게 그 일을 해내지만, 일이 힘들어 버겁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듯 엄마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듯 슈퍼우먼 워킹맘도 있을 수 없다.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내 머리는 하나, 팔과 다리는 두 개다.      


그래서 엄마가 된 나는 요령을 피우기로 했다. 적당히 넘어가는 잔꾀가 아니라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이치와 삶의 가장 긴요한 골자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르는 요령 말이다. 예전엔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맘만 먹어서는 안 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더 이상 1인분의 삶은 불가능하니까. 나를 소진하지 않고 남겨두는 하루를 살려고 한다.      


돈 아끼려고 차선을 선택하지 않고 돈 써서 내가 편한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손목과 허리 아껴주는 육아용품들은 무조건 사고, 아이 반찬 만들다가 피곤해질 바엔 주문하고 아이 한 번 더 안아주고, 당분간 내가 버는 돈은 저축 대신 육아와 나를 위한 소비로 마음먹는다. 가성비 없는 삶도 살아본다. 그래야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아이도 충분히 안아줄 수 있다. 엄마로 살고 나로도 살 수도 있다.     








실력 없이 피우는 요령이 아닌 능력과 이력으로 무장한 요령을 마음껏 피우리라. 이제 나는 무한한 발전과 성장보다 유지와 지탱이 더 중요한 생의 시기가 됐다. 완벽한 엄마라는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동시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뭐든 구분 지어 체력과 마음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하나씩 한다. 엄마라는 의무를 행하면서도 엄마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나려 한다. ‘해방은 변화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로 변했고 엄마인 나는 변화할 것이다.      


나에게 경력이 가장 오래됐고 실력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길이길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나운서, 경력과 실력은 부족하지만 죽을 때까지 오래오래 하고 싶은 일은 작가, 경력도 없고 실력도 없으니 욕심부리지 않고 잘 타협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일은 엄마다.     


엄마는 나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며 ‘본캐’가 아닌 ‘부캐’다.


나는 나로 살고 그리고 엄마로도 산다.
















안녕하세요! 임희정입니다.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






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신하고 출산을 하고 어린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고통과 흘렸던 눈물과 분출하지 못했던 분노와

품었던 생각과 생겨난 질문들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브런치북에 연재했던 글과 더 많은 글을 모아

고치고 다듬고 고민하며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엄마와 우울한 엄마와

엄마가 될 이들과 엄마가 아닌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이 기록이 혼돈과 아픔의 시간을 겪고있을 엄마들에게 위로가

엄마가 아닌 이들에게는 이해의 품을 넓혀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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