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희정 Aug 18. 2023

세상 모든 워킹맘들에게

잘하려고 하지 말고 ‘덜’ 하려고 하세요!


    

자유의지를 잠들게 하라. ‘해야 한다’는 이제 그만.

-알베르 카뮈      



    






출산 후 복직을 앞둔 동생이 워킹맘인 나에게 전화해 물었다.      




언니 육아만 하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데
어떻게 일하면서 아이도 봐요?
언니는 어떻게 해요?     




질문 앞에 대답 대신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삶.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 후회와 다짐 끝에 지금의 루틴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나는 이 과정을 거칠 세상 모든 워킹맘들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의 말을 고른다. 긴 대답을 쓴다. 나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충분한 육아휴직이 보장되지 않는 한 아이를 낳고 몸무게와 체력보다 먼저 돌아오는 건 ‘일’이다. ‘엄마’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생활도 삶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됐는데 회사는 예전처럼 돌아와 일을 하라고 한다. 아이는 너무 어리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반가우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나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 중에 뭘 우선시해야 할지. 내 몸은 하나인데 두 개여도 모자랄 워킹맘의 삶이 두렵고 어렵다.    




나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 중에 뭘 우선시해야 할지

 




먼저 정확한 상황 파악과 인지가 필요하다. 세상엔 의지와 의욕만으로는 되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생활이 그렇다. 이 시기는 ‘생애 엄청난 노동’을 해내야 하는 때다. 그걸 먼저 알아야 한다. 회사와 집, 출근해야 할 곳이 두 곳이고 내 일과 집안일, 나와 아이를 끊임없이 챙기고 살펴야 하는 날들이다. 나의 부지런함과 치밀한 계획도 예측 불가능한 아이의 상태 앞에 소용없어져 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는 정도를 모르며 순서대로 하는 법이 없고 너무 자주 아프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모르고 여리고 취약하게 태어난 인간의 상태가 그렇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잘할 거예요’라는 응원 대신 ‘못할 테니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라는 현실 조언을 먼저 건네고 싶다. 못 한다는 건 절대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혼돈의 특이 상황이 너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워킹맘들이 낙심하지 않고 결심하길 바란다. 예전과 다를 거라는 결심. 그걸 받아들일 결심. 그 결심이 당신과 고된 삶 사이의 완충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 거의 모든 워킹맘은 가사와 육아, 일까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데도 항상 아이에게 미안하고 매번 직장에서도 죄송하다. 그들은 토로한다.




우리는 회사에서는 애 엄마고
집에서는 회사원이야.   







 


다음으로 중요한 건 총합으로 보는 마인드다. 아이를 낳기 전에 우리는 내 일만 잘하면 됐다. 아이를 낳은 후엔 내 일만 할 수 없다. 출근 준비 전에 등원 준비, 퇴근 후엔 육아 출근. 그러니 나의 힘을 나누고 분산시킬 수밖에 없다. 그전엔 일하는데 10을 썼다면 이제는 일에 5, 육아에 5, 이렇게 나눗셈을 해야 한다. 각자의 기준으로 보면 일도 5가 모자라고 육아도 5가 모자란 게 되기 때문에 둘을 덧셈해서 10 ‘총합’으로 생각해야 한다. 설령 일4 육아3 가사1을 해서 2가 부족한 것 같아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린 이미 그전에 12를 했던 거다.


엄마가 되기 직전까지 내가 일궈온 것들을 충분히 인정하자. 과거를 존중하고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그걸 못해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를 부정하기만 했다. 엄마가 된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엄마가 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엄마가 된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엄마가 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각오가 필요하다. ‘일과 육아, 다 잘 해내야지!’라는 각오가 절대 아닌 ‘일과 육아, 다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지!’라는 각오. 누구나 처음엔 일도 잘하고 싶고 아이도 잘 보고 싶은 의욕에 슈퍼우먼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의지로 되는 건 체력과 여건이 받쳐줄 때 가능하다. 우리는 힘과 환경을 꼭 만들어야 한다.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는 일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구세주’를 확보하는 일까지. 이것이 복직을 앞두고 엄마가 해야 할 우선순위의 준비다. 그런데 처음엔 일도 잘하고 싶고 아이도 잘 보고 싶은 의욕에 슈퍼우먼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나도 그랬다. 그럴 땐 이 문장을 읽자.   



  

‘슈퍼우먼이 돼보려고 돈도 벌고 애도 보다가 평범한 인간임을 깨닫고 결국 사표를 낸다’

- [한겨레프리즘] 슈퍼우먼은 없다. ‘황춘화 기자’     








우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슈퍼우먼도 되지 말아야 한다. 아이도 일도 나도 소중하니까. 이제 우린 무한한 발전과 성장보다 유지와 지탱이 더 중요한 생의 시기가 됐다.     


사실 엄마가 평범한 인간이라 사표를 낸다기보다 여성에게 너무 많이 쏠려있는 돌봄의 기울기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근무 형태의 부족, 더 넓은 보육 지원의 필요 등 많은 원인이 있다. 당장 바뀌는 데는 많은 변화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므로 당장 할 수 있는 건 경험한 우리가 말하는 것이다. 엄마의 말은 귀하다. 수다부터 토론까지 많이 말해야 한다. 개선은 인지와 파악에서부터 시작되고 절대적인 증언들로 동력을 얻는다. 나도 없는 체력을 끌어모아 말하고 쓸 것이다. 내가 아끼는 동생이, 직장 후배가, 수많은 워킹맘들이 더 수월하게 일하고 아이 키울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엄마의 말은 귀하다.




나 또한 그 혼돈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운동을 시작하고, 아이 반찬은 사 먹이고, 피곤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에는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혼자 카페에 가서 두세 시간 커피 마시면서 책 보고 글 쓰면서였다. ‘포기’가 괜찮아지게 만들었다. 무질서 뒤엔 질서가 혼돈 뒤엔 안정이 왔다. 노력과 견딤과 시간이 만들어 낸 거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건 슈퍼우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 당신과 나, 세상 모든 엄마들이라고.     


출산 후 우리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예전과 달라졌다. 이제는 일을 하고 나면, 일을 안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보다 쉼의 양이 조금 더 많아야 유지가 된다. 지금까지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일을 안 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필요해졌다.     


적당한 엄마,

유연한 직장인,

나를 소모하지 않는 내가,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볼 수 있는 진짜 슈퍼우먼이다.   








       






안녕하세요!

말하고 쓰고 돌보는 사람,

뉴스하고 글 쓰고 애도 키우는 임희정입니다.


지난 토요일 8/12부터 '엄마라는 부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댓글로 응원을 해주셔서 너무 기분이 째지고 엄청난 힘을 받았지 뭐예요. 받은 그 힘으로 힘내서 완전 열심히 글 써야지 다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글로 쓰다가 부모가 되었습니다. 오래전이지만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글로 많은 주목을 받고 응원을 받았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나운서, 작가에 이어 엄마라는 직책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삶을 살며 이 세계를 이제야 알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이 엄청나게 확장되어 가는 걸 느낍니다.


잘 기록하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곳에 좋은 글을 남기도록 완전 완전 노력해 버리겠습니다!


매주 토요일 '엄마라는 부캐' 열심히 연재해 볼게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보냅니다♥






이전 01화 엄마는 나의 ‘부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