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노희경이 던지는 메시지
지독한 능력주의가 뒤덮은 한국사회에서 실패는 용서받기 어려운 경험이 됐다. 이제는 이 사회가 실패를 비판하는 것인지 즐기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느낀다. 오래전 IMF라는 이정표 앞에서 능력주의로 급격히 방향을 바꾼 사회 분위기는 더 이상 여유롭고 인자하게 실패한 자를 보듬어주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동석과 같다.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었다. 모두의 삶은 처음이고 서투르지만 그냥 우리 엄마라 아빠라 다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왜 나한테 사과하지 않지? 잘못했다고 하지 않지? 미안하다고 하지 않지?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일부러 안 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용서할 자격이 있고 한참 뒤에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제 우리 부모님이 부모가 됐을 때 나이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전혀 완벽하지 않다. 운동은 말만 하고 시작도 못했고, 비상식적인 소비를 하기도 하고, 바보같은 후회도 한다. 여전히 부모님께 이런 매일을 위로받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받고 싶은 것도 20년 전과 똑같다.
괜찮아란 말이 가장 큰 힘이 되는 순간은 가장 괜찮지 않을 때였다. 어제의 나는 부족해서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말했다. 괜찮아졌어. 그래서 이제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