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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과정을 곱씹는 연습

과정호수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by Braun

#1-1

예고 없는 가을비가 왔다. 세차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방금 지나간 차가 흙탕물을 한바탕 끼얹고 간다.

밀리는 길을 뚫고 온 카페에는 주차자리가 혼잡하다. 겨우 자리를 찾아 대고 허겁지겁 뛰어가 트렁크의 우산을 꺼낸다. 들어온 카페엔 취소된 야구동호회 회원들의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이다.

집중하기 힘들다. 뭐하지? 할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1-2

예고 없는 가을비가 왔다. 처음 가는 길은 도심을 지나더니 보기 드문 90년대 농촌 풍경을 안내한다.

2층 건물조차 드문 2차선 도로는 성치 않다. 오래전 할머니 댁에 갔다가, 읍내 농협에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생각보다 차가 많았는데 운 좋게 한 자리가 보여서 접근했다. 마침 자신 없는 평행주차 연습을 했다. 100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오늘도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조금씩 발전한 날이다.


#2

집 값이 앞으로 더 떨어져도, 필요하고 충분히 살만한 좋은 집이 나오면 살 거라는 내 의견에 전월세를 통해 리스크를 햇지하면 손해보지 않는데 왜 그러냔 친구의 말이 돌아왔다. 10년간 3억을 손해 봐도 난 가족들과 함께 우리가 소유한 공간에서 쌓는 추억이 더 비싸다고 답했던 것 같다. 3억은 시간이 지나면 벌 수 있지만, 내 10년을 이사로 보내면 어떻게 보상받는단 말인가?

"그렇게 따지면 결국 죽는 게 결과인데, 뭘 위해 그러는 건데?"

친구는 이 질문엔 선뜻 답하지 못했다.


힘든 과정을 인내하기 위해 결과라는 목표 설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과정을 결과만큼 대우해주지 않는다면 감정적으로 너무 메마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친구를 보고 알았다.


과정호수가 결과댐을 위해 모두 메말라서 황폐한 호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메말라진 사람은 결과에 따라 스스로에게 더 가혹한 학대를 하기 마련이고 누구나 겪고 딛는 실패에도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오늘도 행복했고 뿌듯했고 참 좋은 하루였다고 곱씹으며 자기 전에 5분만 과정호수에 낚싯대를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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