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기 현숙은 왜 영식이를 찢었나
2002년 월드컵 이후 21년 만에 커뮤니티 대통합을 이룬 주인공은 정치인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메이저리그 유럽빅4리그 축구선수도 아닌 나는솔로 일반인 출연자였다. 아무 이유 없이 상대의 호의를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점만이 이유는 아니었고 아마 많은 사람들의 PTSD를 일으킨 것이 대통합의 이유였을 것이다.
2000년대 가파른 여권신장의 부작용으로 루저녀 등이 나타남과 동시에 남녀의 시소는 굉장히 기울어져 있었다. 공대녀는 과제와 필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해도 되는 2000년대 초반 분위기였다. 현상 이면에 IMF 이후 급부상한 여성 상품론-돈과 시간, 그런 것들로 여자를 사실상 구매- 한다는 개념도 등장하는 시기였다. 백마 탄 왕자가 노처녀를 데려간다는 신데렐라를 모두 꿈꾸는 사회 내 이름은 김삼순이 이런 시대상을 대변한 흥행작이었다.
환경이 사람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단 성향의 발동을 자극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나르시시스트가 발전되기에 좋은 자양분이 제공되는 것이 최근 20년이다.
나르시시스트가 피해를 끼치는 이유는 통제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사람이므로 내가 원하는 누군가 혹은 특정 상황을 스스로 모두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분명 통제되지 않는 사람과 상황과의 갈등을 야기한다.
관찰력이 좋다면 이들을 걸러내기 쉽다. 이들은 대체로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인 몸동작을 습관처럼 반복한다. 대신 행동은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정의하긴 어렵다. 시선을 지나치게 피하기도 하고 과도하게 눈을 마주치기도 하는 식이다. 오히려 집중해야 하는 것은 태도변화의 속도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나눈 호의적/적대적 사람에 대한 태도가 극명하게 다르고 강자/약자에 대한 태도도 극심하게 다른데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서 괴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강자에 입장이라면 오히려 피해야 한다. 이들은 강자/호의적인 사람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한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면서 집착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의적으로 손절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끈질기게 붙어있는다. 그를 위해 약자를 음해하고 희생하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면 당신 주변에 아무도 없을 수 있다.
당신이 약자라면 뒤를 보이고 도망가면 안 된다. 이들은 등 뒤에 쉽게 칼을 꽂을 수 있어 환호할 것이다. 당당하게 맞서면서 논리적으로 논파하거나 정당한 절차로 대응하면 한 발 물러날 것이다. 주변의 강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더 효율적인 대응법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약자로 분류한 사람은 아마 혼자서 대응하기 어려운 사람을 선별했을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를 대표적으로 ‘자기애’라고 기억하지만 그게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공과 행복은 훌륭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끔찍한 사람을 피하는 것에 달려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