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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와 학교의 글쓰기

GPT가 발전할수록 글쓰기 능력은 중요해진다

by 소소인 Mar 02. 2025

어렵고 중요해서 쉽게 사라져버린 학교의 글쓰기


챗GPT가 세상에 나온 지 3년. 학교는 그 이전과 다른 곳이 되었다. GPT 이전에 스마트폰이 오락거리이자 통신의 수단으로써 학생들의 주의와 에너지, 시간을 빼앗아갔다고 하면 GPT는 학습의 경험을 무너뜨리고 있는 지경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알려진 바와 같이 GPT는 강력한, 정말로 강력한 성능을 가진 텍스트 생성 인공지능이다. 소설과 시를 비롯한 문학에서부터 칼럼과 논설문, 심지어 논문에 이르기까지, 텍스트의 형식을 갖춘 모든 종류의 콘텐츠를 한순간에, 그것도 아주 높은 퀄리티로 뽑아낸다. '글을 쓰는 인공지능'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글쓰기의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글쓰기 과제를 GPT에게 맡겨버렸다. 글쓰기 과제의 주제를 그대로 프롬프트에 넣은 후 그 결과물을 그대로 복사해서 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지도 않았는데 글이 제출되는 기이한 일이, 이제 학교에서는 흔하게 일어난다.


글쓰기는 어려운 작업이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문장과 다음 문장은 매끄러운가. 문단과 문단은 유기적인가. 단어들은 적절히 사용되었는가.. 글 한 편을 쓰는 건 마치 혼자 건물을 짓는 일과도 같다. 기초공사(개요)부터 외벽 칠하기(꾸밈)까지,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 과정을 겪는 건 생각의 성장을 위해 너무나 좋은 경험이다. 아니, 지금까지 글쓰기를 대체할 만한 생각의 성장 방법을 나는 겪어보지 못했다. 어떤 첨단 에듀테크도 펜과 종이의 오랜 접촉보다 좋은 효과를 보인 적이 없다.


어려워서 가치 있고, 또 너무나 교육적인 이 글쓰기가 GPT라는 최첨단 인공지능 때문에 무너지는 현실은 너무나 큰 모순이다. 마치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전두엽의 기능을 인공지능이 빨아들이는 것 같다. 프롬프트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그 수많은 질문들이 또다시 인공지능을 유능하게 만들 테니까 말이다.



공부의 거의 모든 것. 읽기와 말하기와 글쓰기.


읽기와 말하기, 글쓰기는 공부의 거의 모든 것이다. 예를 들면 과학 공부란, 과학 어휘가 사용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한 후 그 개념들을 이용해서 스스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행위를 말한다. 과학의 자리에 수학을 두면 수학공부, 역사를 두면 역사공부가 된다. 요 근래에 유행한다는 PBL(문제기반학습 Problem-Based Learning :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수업모형)의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자신이 학습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대표적인 '활동중심 수업'모델에서도 글쓰기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요컨대, 읽고 말하고 글 쓰는 것은 학습의 알파요 베타요 오메가다.


읽고 말하고 쓰기 중에 가장 수준 높은 단계가 바로 글쓰기다. 요약하고 재진술하고, 주장하고, 활용하고, 종합하는 이 모든 과정이 글쓰기를 하면서 이루어진다. 글은 말과 달라서 오랜 시간 동안 쓰이고, 영구적으로 보존되기 때문에 말보다 훨씬 많은 고민과 시간이 든다. 읽기와 말하기보다 더 깊은 사고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주제의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그 분야에 있어 뛰어난 학업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학교, 특히 대학으로 갈수록 글쓰기 과제를 많이 요구하고 대학원 수업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수업이 쓰기와 말하기로 구성되는 것이다.



GPT라 만든 교실의 회색 풍경


그런데 GPT가 나왔다. 이 어려운 과제인 글쓰기를 단 1초면 해결해 주는 툴이 등장한 것이다. 학생들은 너도나도 GPT로 글쓰기 과제를 해결했고, 혼자서 여러 개의 과제를 채점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그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가 어렵고 설사 GPT의 사용이 깊이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확실한 근거를 들어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을 제출하더라도 평가에서 감점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문제는 마땅히 글을 쓰면서 겪어야 할 학습의 마지막 단계가 GPT가 글을 작성하는 그 1초 만에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어려운 과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데다가 평가에 큰 문제도 없는 툴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학습에서 글쓰기가 최종적이며 중요한 배움의 수단인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이 점수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부정행위에 다름없다. GPT의 또 다른 문제는 수많은 학생들을 부정행위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에서는 글쓰기와 함께 발표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이 쓴 글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발표에 뛰어난 학생들도 물론 있지만,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쓴(썼을지도 모르는) 글을 가지고 나와서 그대로 읽고 들어간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인공지능이 만들어주는 시대이니, 발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일이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정말로'학습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발표 후 예리한 질문을 던져서 대답을 하게 하거나, 지필평가를 치르는 수밖에 없다. GPT가  학교의 학습과 평가 기능을 크게 퇴색시키는 장면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의 과제를 끝없이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때로는 학생들 중에 많은 독서와 토론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글을 쓰는 학생도 있다. 요즘 세태와 너무 달라서 발표와 아주 짧은 대화 만으로도 깊이가 느껴지는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의 글도 GPT의 그것들과 섞여 있으면 '본인이 쓴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부터 사게 된다. 거의 모든 글이 인공지능의 손끝에서 태어나니 좋은 글이 표절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학생의 글을 성의 있게 읽고 피드백을 주려 해도(많은 글을 읽어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본인이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지도를 해도 의미가 없다. 결국, 학생은 배울 기회를 인공지능에게 완전히 빼앗겨 버리는 것이다.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학교의 한 편에서는 'GPT로 글쓰기'를 하나의 강좌로 하여 수업을 진행하거나, 아얘 GPT로 글을 작성하는 것을 과제로 내기도 한다. 이른바 '미래교육'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아래 이런 프로젝트 수업이 실시되기도 한다. 교육청에서는 인공지능이라는 타이틀만 달고 있으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예산을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해져 가는 글쓰기 능력


학교의 글쓰기가 퇴색하는 현실과 반대로 글쓰기능력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GPT를 이용하면 초등학생도 상대성 이론이나 칸트의 철학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글의 신뢰성을 판별하고 자신의 목적과 상황에 맞추어 정확히 다듬을 수 있는 능력은 수준 높은 글을 써 본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그리고 GPT가 학교의 교육기능을 무력화할수록 GPT의 글을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갖춘 사람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글쓰기와 글 다듬기 능력이 희소한 능력이 된다면 미래사회에서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은 가치 있는 인재가 될 수밖에 없다. 수요와 공급이 시장의 기본 원리 아닌가. GPT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이 글을 쓴다. 참으로 유능한 '조수'가 아닐 수 없다. 다만 GPT를 '조수'로 활용하고 자신이 GPT의 '보스'로 자리하려면 결재권자로서의 권위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GPT의 글을 평가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것을 갖추기 위해서는 거꾸로 글쓰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조수를 보스로 모시고 다니는 하극상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GPT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코딩이라고 한다. 코딩 언어를 사용하는 엔지니어들이 만든 툴이니, 엔지니어의 일을 가장 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도 수준 높은 엔지니어는 GPT가 짜 놓은 코드를 자신의 목적과 상황에 맞추어 적절히 변형해서 사용한다. 엔지니어의 세계가 그러할진대, 자연어 영역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식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에서도 최종적 단계인 글쓰기를 통해 단련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지적인 능력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글쓰기가 발전시키는 다양한 뇌 전두엽의 기능은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읽기와 말하기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주며, 이는 지적 상호작용의 과정 속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글쓰기의 경험은 직업 세계에서의 발전 가능성과 교양인으로서의 삶, 타인과의 상호작용 등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글쓰기가 갖는 또 다른 기능도 중요하다. 글쓰기는 지식의 표현이나 바이럴 마케팅, 계약서 작성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개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의 세밀한 표현 수단이기도 하다. 인간이 감정표현에 관련된 다양한 어휘를 만들어내는 것도 여러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의 성격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의 표현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GPT가 대신해 봐야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학교를 고장내서 돈을 버는 어른의 세계


사실 학교는 GPT 이전에도 글쓰기 교육에 있어 그리 유능한 기관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학교는 수능시험의 준비 기관이었고, 수능은 오지선다 객관식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글쓰기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다만 아날로그의 시대였기 때문에 지금보다 많은 독서와 글쓰기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러다 입시제도가 개편되고 학생부 종합전형이 생기면서 글쓰기의 중요성이 다소 부각되었다. 학교 활동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에는 글쓰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입시 과정에서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기소개서는 학생들이 몇 달 동안 머리를 감싸 쥐고 작성하는 힘든 글쓰기 과제였다. 개인적으로 글쓰기 지도를 가장 많이 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학생들이 글쓰기의 고통을 체감하고, 또 그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때였다. 빨간색 펜을 들고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자기소개서를 끝없이 첨삭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인간 GPT'가 등장한 것이다. 서울의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자기소개서 대필 서비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생활기록부를 가져가서 대필 담당자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소재를 정리한 후에 글을 써 주는 서비스였다. 키워드를 주면 매끄러운 글을 토해 내주는 것이, 오늘날 GPT가 하는 일과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었다. 이런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자기소개서는 사라졌고 그 이후에 진짜 GPT가 등장해 버렸다. 이제 학교는 글쓰기를 배우기도, 가르치기도 어려운 곳이 되었다.


수행평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생활기록부에 직결되면서 수행평가의 중요도가 올라가자 리포트를 대필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심지어 '컨설팅 업체'에서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기록해 오는 일까지 생겼다. 생활기록부 기록이 어떤 승낙절차도 없이 아웃소싱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학교는 수행평가를 '과제형을 배제하고 수업 중에 실시'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학교에서의 수행을 평가하는 것이 수행평가 본래의 취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그런 방식으로 배우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기에 포함될 수 없었다. 철저한 경쟁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에서 평가는 공정성의 담보가 무조건적인 제1원칙이기 때문이다.


인간 GPT와 인공지능 GPT는 학교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는 그 본질 유사하다. 어른들의 비즈니스가 학교의 기능 중 하나를 망가뜨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돈을 버는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학교는 세상과 동떨어진 무인도가 아니다.


무너진 글쓰기를 되돌릴 방법


무너진 글쓰기를 회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쉽지는 않지만 방법을 제안 해 본다. 먼저 학급당 인원수를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글쓰기는 개별지도가 필수적이다. 글을 제출하더라도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두 번째는 GPT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과제형으로 글쓰기를 제시한다는 것은 즉 GPT 사용을 허가한다는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 글쓰기를 수업 중에 하되 한 두문장에서 한 문단, 여러 문단 쓰기로 단계를 밟아 나가도록 해서 정해진 수업 중에 글쓰기에 대한 피드백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한다.


세 번째는, 평가에 포함되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교사와 학생이 순수하게 글쓰기 실력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합의하고 GPT를 쓰지 않기로 한 후에 과제형으로 글쓰기를 한다. 평가에 들어가면 부담감으로 인해 GPT를 사용하게 되니 글쓰기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네 번째는 GPT를 활용하되 먼저 스스로 글을 완성한 후 같은 내용요소로 GPT가 산출한 글과 스스로 비교하는 것이다. (특히 비문학이라면) 글에는 저자의 의도가 명확해야 하므로 자신의 글이 있어야 GPT의 글이 가진 효용성을 온전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는 GPT가 산출한 글을 평가하며 첨삭을 하는 것이다. GPT시대에는 글의 초안을 잡는 시간이 매우 단축되는 반면 그것을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스스로 글쓰기 능력을 갖춘 후 이렇게 GPT의 글을 평가하는 연습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다섯가지를 시행하기 위해 학생과 교사를 북돋아 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그게 무엇일까. 교사에게는 보람과 일정액의 보충수당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 본다. 그런데, 학생들을 유도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도전이 필요할 것 같다. 성적을 비롯한 외적 동기에 익숙한 학생들로 하여금 힘든 과업인 글쓰기의 가치를 인지하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뇌로 생각하는 한 글쓰기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피와 살로 된 존재이며 뇌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인간이 디지털의 비트로 변환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유효한 교육의 수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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