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움켜쥔 스마트폰
잠자는 학생들은 늘 있었다. 늦게까지 게임을 해서, 알바를 다녀와서,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수업이 의미없고 재미없어서 등등. 사연은 달라도 책상 위에 엎드린 뒷통수는 하나 같다. 그 뒷통수를 바라보며 수업에 임하는 교사사들의 마음도 무겁기 그지없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걸까'
교사에게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하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바로 책상 위에 엎드려서 꼼짝도 안 하는 학생들을 볼 때다. 흔들어 깨워도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곧바로 다시 엎드려버리고, 때로는 역정을 내기까지 하는 학생들. 혼낼수도, 달랠수도 없는 그 학생들 앞에서 교사들은 쉽게 무기력함과 자괴감에 빠진다. 교실에서 '잠'과 '지루함'은 교사가 수업시간마다 상대하는 가장 까다로운 적수이고, 나처럼 전투력(?)이 약한 교사는 이 둘에게 손쉬운 KO패를 당하곤 한다.
학교를 다녔던 사람 중에 한번도 학교에서 잠을 자질 않았던 사람은 단연컨데 없을 것이다. 1교시의 아직 덜 깬 눈꺼풀, 5교시의 식곤증, 쉬는 시간의 쪽잠.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 '잠'은 모든 학생들의 평범한 일과 중 하나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코로나 이후부터 일부 학생들이 '새로운 잠' 빠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깊고 또 무거운 잠. 그리고 강한 무기력증을 동반한 잠이다.
예전에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던 학생들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오히려 활발한 경우가 많았다. 10분을 쪼개고 쪼개서 매점에 가고 축구를 하고 수다도 떨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10분만에 먹어치우고 바로 운동장으로 뛰어가던, 공부에는 흥미가 없지만 점심메뉴와 친구들 관계에는 눈을 번뜩이던 학생들.
요즘의 무기력한 학생들은 다르다. 수업시간 뿐만 아니라 쉬는시간과 점심시간에도 돌기둥처럼 자리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점심도 굶고 친구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업 이외의 시간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시간을 보낸다. 대체 뭘 하길래 저 화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걸까. 슬쩍 다가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 보면 게임이나 쇼츠영상이 띄워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끔 웹툰이나 웹소실을 보기도 한다. 화면에 띄워진 것이 무엇이든 이 학생들은 몸만 교실에 있을 뿐 정신은 휴대폰 속 메타버스 속에 들어가 있다.
그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지, 외롭지는 않은지 본심은 알기 어렵다. 상담을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심은 먹느냐(이 질문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누구와 친하게 지내냐', '휴대폰으로 주로 뭘 하냐', '잠은 잘 자냐'..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밥은 먹지 않고 친구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별로 상관 없다고, 괜찮다고 이야기를 한다. 휴대폰만 손에 쥐어주면 밥이고 친구고 다 상관 없다는 아이들. 정말 그 마음 속 까지 괜찮은건지,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그 진심은 알기 어렵다.
고등학교의 특성 상, 상담을 할 때에는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늘 한다. 이 학생들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모르겠어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여러가지 미래들 중에 하나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이 끝나면 아이들은 곧장 다시 휴대폰 속 메타버스로 돌아가 버린다. 차라리 교실의 다른 한편에서 소란을 일으키다 가끔 사고를 치는 아이들이 낫겠다 싶을 정도다. 최소한 그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교실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이 대부분 '덜 자란'상태라는 점이다. 몸은 컸지만, 정신이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먼 곳에 가보지 못한 학생들도 흔하다. 자신과 어울릴 만한 친구를 찾아 교류하고 가벼운 수다를 떠는 일도 이 학생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준비물을 혼자 챙기지 못하고,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 십대 후반이 맞는지 의심 될 정도로 자라지 않은 아이들. 과연 이 학생들이 나중에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하고, 적금을 들고.. 집을 사거나 전세계약을 하거나 하는 일들을 할수 있을까. 청소년기에 의례 겪어야 할 아날로그 세상의, 평범하지만 중요한 그 경험들을 전부 메타버스 속으로 치환해 버린 학생들.
과거에도 주변 친구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고 혼자만의 세상에 들어가 생활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던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리듬에 맞춰 생활하던, 그런 친구들. 그런 학생들과 근래의 무기력한 학생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과거의 학생들은 대부분 책 속 세상에 들어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신이 교실에 있지 않은 것은 똑같은 사실이지만 과거에는 교실을 떠난 그 정신이 활자 속의 세상을 떠돌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학생들은 정신은 휴대폰 속의 메타버스로 이주해 버렸다. 더 강렬하고, 더욱 강한 무기력을 야기하는 그 블랙홀 같은 공간 말이다.
어떤 이는 스마트폰이 무기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붕괴된 교실과 우울하고 무기력한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스마트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면, 스티브 잡스 이전의 교실은 아무 문제도 없었어야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사회가 그렇듯이 학교도 완전 무결했던 적이 없다.
학생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원인도 당연히 스마트폰이 전부가 아니다. 가정환경이나 성격, 학업성취에 대한 무관심이나 경쟁체제에 대한 환멸 등등,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무기력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교실에 도사리고 있었던 모든 문제들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집중력과 인내심 저하, 문해력과 학업성취 문제, 우울, 불안, 대인관계 문제... 교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에 있어서 스마트폰은 대부분 부정적인 방향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이 종합된 결과가 바로 '육중한 무기력'이다. 집중력과 학업능력이 저하되니 수업에 대한 만족이 떨어지고 끝없이 출력되는 비현실적이며, 남과의 비교를 강요하며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우울과 불안을 증폭시킨다. 스마트폰이 친구를 대신하면서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져 점심먹을 친구를 만들지 못한다. 그 결과 학창시절의 학생들이 모두 손꼽아 기다리는 점심시간마저 자리에 일어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디어 이론의 아버지인 마셜 맥클루언이 말했듯이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는 그 속성 자체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게임을 하던, 음악을 듣던, 인터넷 강의를 듣던 간에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를 사용한다면 공통적으로 받게 되는 영향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중요한 미디어로서 스마트폰의 기본 속성은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한 강한 중독성이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그 부분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요즘 부모님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언제 사 주어야 하는지라고 들었다. 나 역시 자녀가 있는 부모로서 이 질문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자면, '최대한 늦게'라고 답하고 싶다. 자기 자신이 뼈와 살로 구성된 아날로그적 존재임을 알고, 삶의 참된 행복과 현실이 이 물질 세상 속에 있음을 충분히 깨달은 뒤. 그리고 휴대폰이 뿜어내는 콘텐츠의 무기력한 소비자가 되는 건 삶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것을 최소한 이성적으로라도 충분히 인식한 뒤에야 스마트폰을 가져야 한다.(SNS에 가입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갖는 것 보다도 훨씬 뒤의 일이거나, 아얘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SNS는 비지니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성인이라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휴대폰 속 메타버스의 무기력한 소비자가 되어 하루종일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답은 하나뿐이다. 하루 중 학교에 있는 시간이라도 휴대폰을 손에 쥐지 않도록 하는 것. 과연 그 손에서 쉽게 스마트폰을 빼낼 수 있을까. 그 과정은 꽤나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교실 한구석의 무기력은 지금 그정도로 무겁고, 시급한 지경에 와 있다.(학생들의 휴대폰을 걷는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비트의 세상에서 아날로그로 돌아오는 것. 그것부터가 이 육중한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아주 작은'한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