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온라인 도박과 도박빚의 그늘

스마트폰에 실려 교실에 닿은 어른의 탐욕

by 소소인 Mar 09. 2025

가짜 도박이 진짜 도박으로


수능이 끝난 12월. 고3 교실에서는 장난기 넘치는 학생들이 학교에 화투나 카드를 가지고 와서 선생님 몰래 도박판을 벌이곤 했다. 개중에 좀 '논다' 하는 아이들은 진짜 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꿀밤이나 손목 때리기를 하는 귀여운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에서 도박이란 수능을 끝내고 성년을 앞둔 학생들이 벌이는 소소한 일탈이었다.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퍽치기'라고 해서, 교과서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손으로 책을 때려서 동전들이 전부 같은 면이 나오면 동전을 따 가는 게임이 그것이었다. 익살맞는 학생들 몇몇은 이 퍽치기로 동전을 한주먹 모아서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기도 했다. 퍽치기를 하다 적발된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학교에서 도박을 한다며 호되게 혼이 났다. 도박의 도구가 되었다고 해서 교과서를 압수할수도 없으니, 선생님 입장에서도 곤란한 일이기도 했다. 


과거 학교에서의 도박은 이 정도의 깜찍한 놀이나 게임 정도였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학생들 중 누군가가 가져가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리고 그 행위가 모두 눈에 보였기에 선생님의 통제에 속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도박의 공간이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 도박은 깜찍한 놀이가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의 바로 그 도박이 되었다. 학생들의 돈은 디지털 도박장의 운영자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그 액수도 상황에 따라 수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른다. 도박의 현장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기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통제하기도 어렵다. 도박이 가장 공적인 공간인 교실에서 가장 사적인 공간인 스마트폰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음성적인 도박이 된 만큼 발견하기도, 대응하기도 어려운 것이 디지털 도박이다.


디지털 도박은 도박중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도박은 하면 할수록 돈을 잃게 되어 있어서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넣게 된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생들은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거나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데, 이 과정에서 '도박 빚'이 생긴다. 때로는 도박 사이트 운영자에게 포인트를 대가로 빚을 지는 경우도 있다. 이 이후부터는 도박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일종의 가스라이팅 된 상태가 되어 각종 협박을 당하는, 잔혹한 미성년 범죄의 대상이 되는 일도 있다. 학생들이 빚을 져 봐야 얼마나 될까? 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적으면 수십만원, 많은 경우 천만원 가까운 빚을 지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 도박이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방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가 운영되는 원리는 지능적이며 집요하고 또 악의적이다. 음란물을 비롯한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사이트를 홍보하고 가입을 유도한다. 사이트에 가입하면 돈이 없어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포인트를 주는데, 이 포인트는 본래 현금을 주고 구입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사이트에 가입한 학생들은 도박을 하면서 돈을 따기도, 잃기도 하는데 일부러 그렇게 설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에는 소액이라도 돈을 따는 경우가 많다. 도박의 종류도 홀/짝 맞추기처럼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이트에서 딴 돈을 용돈으로 쓰고 도박 사이트에서 탈퇴하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도박 사이트들은 돈을 따더라도 그것을 바로 현금으로 인출하지 못하게 한다. 도박에서 이기면 그 사이트에서만 통용되는 포인트가 지급되고, 그것을 현금으로 바꾸려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기간이 지나기 전에 포인트를 이용해 다시 도박에 참여하는데, 이것이 중독의 매커니즘이다. 재차 참여한 도박의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정해진 확률 게임에 따라 학생들은 돈을 잃게 된다.


도박 사이트에서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친구를 가입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꽤 큰 포인트를 준다. 이 방식 때문에 친구에게 도박을 권하고 또 가입시키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게 된다. 이 권유가 강제성을 띄면 폭력이 된다. 그리고 잃은 돈을 복구하기 위한 도박에 참여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는 일도 생긴다. 


때때로 돈을 크게 딴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수 천만원을 따서 돈잔치를 했다는 학생의 사례도 들어보았다. 이게 정말, 정말이지 큰 문제다. 가끔씩 발생하는 도박 사이트의 성공담들이 -그 실체가 있던 없던 간에-새로운 학생 가입자를 늘리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그런 성공담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도박에 가까운 코인 투자로 일확천금을 얻어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신화에 흔들리는 어른들도 허다하지 않은가.)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카카오톡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요구해서 받아낸 후 협박이나 강요를 일삼는 심각한 상황도 있다. 명백한 범죄이지만 익명의 탈을 쓰고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도박행위를 대부분 부모님에게도 숨기기 때문에 학생들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 되고, 이러한 상황은 학교와 가정에서의 삶 전부를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도박을 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돈을 잃었 심리적 괴로움으로 이어지면서 학업을 비롯한 생활 전체가 무너지기도 한다. 온라인 도박으로 행복해지는 일은 단언컨대 일어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무너뜨린 학교의 울타리


스마트폰이 있기 전, 학교의 담장은 여러 의미에서 학생들의 보호막 역할을 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 외의 사람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학교의 담장으로는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쉽게 들어올 수 없었고 유흥업소나 불량식품도 학교의 문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도박기계가 학교의 담장을 넘어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의 담장은 - 비록 학생들을 구속한다는 비판을 듣기는 했지만 - 사회의 차갑고 냉혹한 어른의 세계가 학교 안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이 방어막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렸다. 과거에도 도박장은 있었다. 안이 하나도 들여다보이지 않는 새까만 건물 속에. 그 도박장이 교실에 들어온다는 건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터치 몇 번이면 교실에 도박장이 열린다. 초등학생도 참여할 수 있는, 돈 앞에서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성인들의 세계가 교실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미치고 있다. 


이것이 거대 기술기업들이 자랑하는 디지털 기술의 혁신일까? 학교에서 도박은 크게 징계받을 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다른 친구에게 가입을 권유하거나 강요하는 건 매우 큰 잘못이고 학교폭력의 하나로 취급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걸까. 



도박을 막기 위한 사회와 학교와 가정의 삼각편대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도박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주길 기대할 것이다. 여기서 '학교'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을 뜻하는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교사가 학생들의 휴대폰을 일일이 검사하도록 해야 할까? 이것이 매우 복잡한 문제임으로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통신기기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사생활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일종의 라이프로그 시스템이다. 자칫 잘못하면 심각한 사생활 침해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물론 학교에서도 온라인 도박에 대해 HR시간에 교육도 하고 학생들에게 주의를 준다. 그리고 관련 사례가 적발되면 강력하게 처벌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돈에 대한 어른들의 탐욕이 스마트폰을 타고 교실에 침범하면서 일어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결국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런 사이트들의 운영을 막고, 강하게 처벌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도박에 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하되, 도박에 빠지게 되는 심리적인 이유와 절대로 돈을 딸 수 없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전달해야 한다. 또한 도박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는 과정을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스마트폰을 가졌다면 언제든지 도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아무리 모범적인 학생이라 해도 그럴 수 있다. 예전처럼 캄캄한 업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담배연기가 자욱한 도박장의 기계 앞에 앉아야만 룰렛이 돌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이 갑자기 이유 없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거나 평소와 다르게 돈과 관련해서 짜증을 마구 낸다면 한번쯤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도박빚을 부모가 갚아주는 것은 절대로 금물이라고 한다. 자신의 도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제 해 줌으로써 도박이 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고 재차 도박판에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일이 된다고 한다. 빚을 유예하던, 아르바이트를 하게 하던 그 돈을 스스로 갚게 해야 빚의 의미를 알게 되고 도박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입시 스케쥴에 맞추기 위해 도박빚을 변제 해 주면 학생은 삶 전체를 망칠 수 있다.


혹자는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도박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린 시절에 화투장을 잡아보았거나, PC게임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던 시절에 온라인 고스톱같은 게임을 했던 기성세대는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이루어지는 학생들의 도박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 결과는 무조건적으로 강한 해악이며 어떤 경우라 해도 금지되어야 한다. 사회와 학교와 가정이 모두 '절대 해선 안되는 행위'로 받아들어야 한다. 


온라인 도박은 보이스피싱 처럼 돈을 노리고 들려 오는 사기꾼들의 노랫소리다. 그들과의 싸움은 아마도 끝이 없을 것이다. 도박문제에 있어 학교는 늘 싸움중이며, 여기에는 사회와 가정이 모두 적극적인 지원군으로서 뛰어들어야 한다. 도박은 스마트폰에 실린 디지털 기술이 학교에 가져온 새로운 전쟁이다. 시작만 있고 끝이 없으며 한 번 시작되면 반드시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잔혹한 현장이다. 이 전쟁은 시작되는 순간 패배하는 것이요, 승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뿐이다. 


--------------


* 도박문제 상담전화 : 1336

이전 04화 GPT와 학교의 글쓰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