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렇듯 학교의 색깔도 하나가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인간 사회가 그러하듯, 학교는 여러 색깔을 가진 복잡한 곳이다. 행복으로 가득한 노랑, 희망찬 초록, 다채로운 무지개 빛, 그리고 암울한 회색. 하나의 교실이지만 그 안에 있는 학생들의 얼굴은 각양각색이다. 흥미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생기있는 얼굴이 있는 반면, 답답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도 많다. 흥미와 답답함. 어울리지 않는 이 감정들이 교차하는 곳이 학교이며 교실이다.
반면, 언론이나 대중매체 속의 학교들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입시경쟁이 지배하는 잔혹한 지옥이었다가, 친구간의 우정이 가득한 낭만적인 곳이 되기도 한다. 자격미달의 교사들이 학생들을 망치는 곳이었다가 어떤 때는 헌신적인 교사가 학생들을 감화시키는 곳으로 묘사된다. 언론 속의 학교는 매일 얼굴을 바꾸는데, 그 얼굴이 동시에 여러 개 였던 적은 없다.
언론이 학교를 자세히 살피지 않는 건 그것이 대중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혹은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면 미디어는 다루지 않는다. '학생들이 등교하고 수업하고, 또 별 일 없이 하교했습니다.'라는 문장은 기사가 되지 못한다. 학교의 실상이 상당부분 이 문장 안에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모순으로 들리겠지만 학교는 경쟁과 우정이 공존하는 곳이다. 학생들은 늘 함께 밥먹을 친구를 찾느라 분주하면서도 여러 친구들 사이에서 돋보이고자 고군분투한다. (나와 같은)자격 미달의 교사들이 있는 반면, 학생들의 성취와 변화에 보람을 느끼고 열정으로 수업에 임하는 교사들도 있다. 학생들 중에는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능력과 인성을 겸비한 아이들도 있고, 정말이지 '답을 알 수 없는'아이들도 있다. 학교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들을 봐도 어떤 것은 내실이 하나도 없고, 어떤 건 정말 기발하고 유익하다. 학교는 한 번도 하나의 얼굴이었던 적이 없다.
TV와 유튜브, 여러 신문기사들이 학교를 이야기한다. 그 대부분은 학교의 어딘가에 돋보기 댄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맞으면서 틀린 이야기들이다. 문제는 학교를 묘사하는 수많은 말과 글, 영상들이 지나칠 정도로 확신에 차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말하는 이와 글쓴 이,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경험한 학교가 학교의 모든 것 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브런치북은 학교의 여러 모습들 중에서 다소 우울해 보이는 풍경들을 글로 옮겨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전체가 비극의 공간은 아니다. 학교는 천국이 아니지만 지옥도 아니다. 당연히 이 곳에 옮겨진 학교의 풍경도 학교 전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암울한 회색의 풍경을,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좀더 나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주어졌지만 미래는 선택에 달려 있다. 학교에 어떤 색을 덧칠할 것인지. 아니, 칠할 수 있을지. 이 부족함으로 가득한 글을 읽어 주는 고마운 분들과 함께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다. 자판위의 손가락은 가볍지 않지만 그 상상 만큼은 가볍고, 또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