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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해진 무기력, 깊이 잠든 학생B-2

B와의 대화, B와의 수업

by 소소인

B와의 대화


B는 오늘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생의 한 모습이다. 이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아 왔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한쪽에서 서울 대치동의 놀라운 교육열이 회자되는 사이에 그 반대편에는 무기력에 빠진 B들이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교사들을 늘어나는 B들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학교의 일상에 있어 B는 교사의 집중적인 관심에 들어오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교사들의 관점에서 먼저 힘을 쏟게 되는 학생들은 조용히 있는 학생들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이다. 다음으로는 학업 성취나 진로 계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우다. B처럼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는 한정된 교사의 관심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학급에 인원이 많을수록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3월. 학생 개별 상담 때 B의 차례가 되었다. 학생들을 하나하나 이해해 가는 시기. B를 향해서도 통상적인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학교생활은 어떠니’

‘잠은 잘 자니’

‘점심은 잘 먹고 있니’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니’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았니’


B는 이 모든 질문에 두 마디 이상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때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기다려 보아도 더 이상의 말이 없다. 이 자리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해 보인다. 무기력은 우울과 연결된 감정이고, 우울은 고립감에 맞닿아 있다. 그래서 우울한 학생들은 교사의 친절한 질문들에 마음을 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깊은 무기력에 있는 학생들은 마음의 빗장이 두껍고, 또 차갑다.


B는 종종 생활지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각을 하거나, 수업 시간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지적을 받는 경우다. B의 경우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다. 교사의 말을 듣고 대답하며, 앞으로 행동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하는 이 흔한 생활지도의 과정. 이것을 거치는 일조차 B에게는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결국 학생이 대답해야 할 말까지 교사가 정해 준 뒤에야 이 힘겨운 대화가 끝이 난다.


그 앞에서의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보다 ‘당혹감’이었다. 처음 겪어 보는 무겁고 강한 무기력. B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일까 ‘치료’일까. 혼내야 할까, 격려해야 할까.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까. 어떤 말에도 응답하지 않는 B 앞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게다가 B와 비슷한 학생들은 느리지만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당혹감에 빠진 교사들도 늘어나는 중이다.


수업 시간. B 앞에 서다


수업 시간. 분필을 들고 수업에 임한다. 교실에는 전자 칠판과 빠른 속도의 와이파이 등,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기자재들이 잔뜩 들어와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분필을 들고 칠판에 글씨는 쓰는 방식으로 수업한다. 설명과 정리로 구성된 내 수업 앞에서, B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다. 처음 5분 정도를 간신히 응시하다가 스르륵, 책상 위로 몸을 뉘어 버린다. 칠판의 글씨를 받아적는 일조차 B에게는 버거워 보인다. 내가 분필을 놓으면, B는 일어날까.


요즘 학교의 수업은-아주 거칠게 분류하면-크게 2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교사가 분필을 잡고 설명식으로 진행하는 강의식. 그리고 학생들이 주도하는 활동식. 많은 이들이 교실의 무기력한 학생을 위한 대책으로 ‘활동식 수업’을 상상할 것이다. 물론 수업 시간의 활동은 학생들의 잠을 깨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B는 다르다.


활동식 수업이 학생들의 잠을 깨워주는 것은 무엇보다 ‘모둠활동’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학생들 개개인에게 어떤 역할이 부여되고, 또 그것이 다른 학생과 연관되기 때문에 책임감이 생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했을 때 인정의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깊은 무기력에 빠진 학생은 애초부터 다른 학생들과 친분이 없고, 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그 역할-대부분 학습에 관한 것이므로-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


교과 수업 시간의 활동은 수업의 내용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지식이 없으면 적극적인 참여가 어렵다는 의미다. 무기력의 기간이 길수록 지식의 빈 곳은 늘어나고 학생은 교과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워진다. 아니, 오히려 더 큰 곤란과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무기력의 문제를 단순히 수업방식의 문제로 치부하고, 교실과 교사 차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6일 오전 09_21_22.png 엎드린 학생 앞에서. 교사는 자주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 무기력함에 함께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잠자는 학생 앞에서, 수업 시간에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백하건대, 아직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이제야 겨우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왜, B는, B가 된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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