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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우울-4(完)

우울 앞에서

by 소소인

우울 앞에 선 교사

우울을 토로하는 A와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우울의 정도가 심할수록, 오래 묵힌 감정일수록 학생들은 그것을 길게 털어놓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이 슬픈 아이들의 말을 열심히 경청하고, 또 공감하면 될까? 그러면 아이들이 ‘저를 이해해 주시는 분은 처음 봤어요’라며 치유될까? 안타깝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교사의 경청을 경험한 학생은 종종 집착에 빠진다. 어른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 주는 교사는 매달리고 싶은 사람이 되기 쉽다. 어떤 학생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찾아오고, 심지어 방과후나 주말에 전화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가 한 아이의 말을 끝없이 들어주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그 상담 관계는 어떤 시점에는 끝이 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또 다른 상처를 입기도 한다. 우울에 빠진 학생에게 쉽사리 경청의 호의를 베풀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없는 경청은 교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 끝없는 듣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부모님이 그런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도 학생들의 우울은 이 세상이 빚어낸 균열이 빚어낸 예리한 상처라 할 수 있다.


응원단장이자 구급대원, 그리고 우리


05ea5e38-88c5-4dfc-8d4c-56c78c76dd79.png 우울의 감정은 때때로 그 실체가 모호하다. 그래서 자주 당황스럽다.


우울에 있어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응원팀의 응원단장, 그리고 구급대원이 되는 것이다. 응원단장의 역할을 이런 것이다. 가끔 학생을 불러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힘겨운 그 감정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위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울이고 있는 현실의 노력 들이 결코 무의미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구급대원의 역할은 우울한 아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제도와 예산을 찾아본다거나, 학생의 우울함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통지하고 치료를 제안하는 것이다. 때때로 부모님 중에 자녀의 우울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교사는 전문가가 아니다. 심한 우울이 의심된다면 의사 선생님에게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아야 한다.


다만, 학생들의 우울은 혼자 쌓아 올린 감정이 아니다. 가정, 사회, 나아가 이 세상이 일으킨 삶의 균열이 학생들의 옆구리로 스며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전체가 다 같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이 깊은 우울을 위로하는 길의 초입이 될 것이다.


학교는 이 세상의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우리 사회의 일부다. A의 우울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다. A는 우울에서 나올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A의 곁에서, 따뜻한 말과 눈빛을 건네고 또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A는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우울의 강을 건너 세상으로 나올 것이다. 그 길은 멀고 또 지난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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