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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우울-3

친구, 기쁨이자 우울의 샘.

by 소소인

기쁨이자 우울의 샘. 친구


가족과 성적이 우울의 가장 큰 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친구 관계도 큰 몫을 차지한다. 가까웠던 친구와 관계가 나빠진다거나, 과거에 친구에게 받았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한 경우도 있다. 새 학년이 되었는데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A에게는 친한 친구가 단 한 명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가까웠던 친구.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아는 한, 우울에 빠진 학생들은 대부분 주변에 친구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인간관계 속에서 누군가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또 다투기도 하는 것은 삶 속에서 항상 있는 일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질투와 동경, 우정과 대립이 빈번히 일어난다. 친해지고, 다투고, 화해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경험들. 문제는 이런 관계의 변화가 일으키는 고통을 감내하지 못할 때 생긴다. 홀로 될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학생들은 교무실에 찾아와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한다. 이 두통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A에게는 상처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 경험은 가정에서 받은 상처와 함께 A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우울의 근원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A가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없게 만드는 족쇄이기도 했다. 그래서 A는, 늘 말했다.


‘저는 혼자예요’


ChatGPT Image 2025년 8월 22일 오전 10_16_42.png 친구는 기쁨이면서 고민의 원천이다(챗GPT 생성 이미지)


어린이라면 어른들의 도움과 의도에 따라 교우관계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는 다르다. 스스로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찾고, 또 그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기도 하는 시기다. A는, 그 길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었다. 한번 받았던 큰 상처는 안 그래도 깊은 우울의 샘을 가진 A에게 너무 큰 짐이었다. 이 상처 앞에서 어른들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두려울 수 있어. 그래도 한번 말을 걸어보는 게 어떠니.’


라고, 나는 확신 없는 대답을 했다. 나 역시 인간관계 앞에서 고민하는 보통의 사람이며 한때는 친구로 인한 상처로 괴로워했노라고. 약간의 과장을 섞어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몇몇 친구를 만났고, 지금까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노라고. 상처가 두렵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어 보라고. 선생님은 늘 응원한다고. 안타깝지만 그 이후에도 A는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진급했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친구란, 중요한 행복의 근원인 동시에 우울의 샘이다. 그 관계 속에서 기뻐하고, 때로는 상처받으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부디 학생들이 이 과정에서 A처럼 깊은 상처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교실에 넘쳐 흐르는 우울 앞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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