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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해진 무기력, 깊이 잠든 학생B-3

무기력의 근원

by 소소인

왜 B는 기운을 잃었을까


B는 어쩌다 기운을 잃었을까. 세상에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렸을 때부터 그런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한때는 끊임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두 다리로 걸으며 삶을 향한 힘을 길러 나갔을 것이다.


먼저, 무기력한 학생 중에서 학업 성취가 높은 경우는 찾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 시기와 이유는 학생마다 다를 테지만, 무기력에 빠진 학생들은 학교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업 시간에 어떠한 종류의 지적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수업 내용의 깊이와 넓이가 확대되어 갈수록 B는 수업에서 멀어져간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한 그 순간부터 그토록 무기력한 학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B에게 수업이란, 단지 몸이 교실에 앉아 있는 시간일 뿐이었다. 자신과 별다른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의 일’이다. 어느 때인가부터 선생님의 설명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집합,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무의미함의 깊이는 계속해서 깊어져 갔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학원에 가도 과외도 받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수업에 참여할 만한 지적인 바탕이 없는 탓에, 경쟁체제를 토대로 운영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B는 늘 ‘패배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사회, 그리고 학교의 관심은 우수한 학생들의 진로에 맞추어져 있다. 경쟁체제의 구조에 단단히 결박된 학교는 이런 방식으로 ‘소외’의 총량을 꾸준히 늘려 나갔고, 그들이 모이고 모여 B의 어깨 위에 쌓여 간 것이다.


학교가 경쟁체제로 학생을 소외시켰다면, 가정은 또 다른 소외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나는 B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수많은 말들 속에서 B의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부모님도 알고 있었다. 학생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집에서도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B의 부모님께서는 의도치 않게 ‘포기’했거나 ‘방치’하고 있었다.


고의는 아니었다. 부모님도 여력이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본인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에 대해 끝없는 하소연을 이어갔다. B의 소외인지, 어머니의 소외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무기력에 빠진 다른 학생들도 비슷했다. 부모님들 역시 각자의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소외’라는 일종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교와 가정이 학생을 소외시켰다면, 그 공허한 마음에 디지털 기술과 알고리즘이 파고들 차례다. 스마트폰의 알고리즘은 텅 빈 마음의 공간을 자극과 쾌락으로 채우고 그 대가로 시간과 돈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 안에 몰입된 사람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이 손쉬운 즐거움의 감정은 타인과의 관계가 주는 안정감, 꾸준한 노력의 보답인 성취감 같은 아날로그 세상의 순리를 비웃는다. 무기력에 빠진 B를 이 디지털 세상의 중독으로부터 꺼내기란, 그래서 무척 어려운 일로 보였다.


그런 B와, 나는 또다른 대화를 나누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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