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와의 또다른 대화
버스를 타지 못한 B
학교 인근의 극장으로 체험학습을 나간 날이었다. 학교에서 선정한 영화를 본 후 귀가하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B도 극장에 왔고 영화를 관람했다. 문제는, B가 혼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로부터 B가 집으로 가는 방법을 모른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크게 당황했다.
B의 집은 극장에서 가까웠고, 버스로 3~4정거장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B는 혼자서 버스를 타 본 경험이 없었다. B는 고등학생이었다. 머릿속에 몇 가지 단상이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B는 어떻게 살아갈까.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며,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전세 계약을 하거나 집을 살 수 있을까. 적금을 들고, 또 보험 계약을 할 수 있을까. 버스를 탈 수 없다는 그 말은, 이차 방정식을 풀지 못한다는 말 보다 훨씬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나는 전화로 B를 불렀다. 집이 어디인지 물어본 후, 직접 차에 태워서 집에 데려다주겠노라고 했다. 그 안에서, 나는 B와 처음으로 조금 긴 호흡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B의 마음속
자동차 안에서, B는 여전히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스마트폰과 B사이에 끼어 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주로 뭘 하니?’
‘좋아하는 게임이 있니?’
B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게임의 이름을 몇 개 이야기했다. 그중에 LOL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마침, 한때 내가 즐겼던 게임이었다.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니?’
‘요즘에 유행하는 아이템이 있나?’
게임에 대해 물어보며, 조금은 과장된 응답을 해 보았다. B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다가 조금씩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B가 여러 개의 문장을 이어서 말하는 모습을 본 것이. 그리고 명확한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 돌아보면, B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학교생활이나 진로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주로 살아가고 있던 게임 속 메타버스에 관한 것. 그것이 B가 길게 내놓을 수 있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실수를 했다.
‘하루에 얼마나 게임을 하니?’
‘게임 시간을 좀 줄이고 집에서 잠을 자는 게 어때?’
이 질문을 하자, B는 입을 닫아버렸다. 집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내가 내놓은 모든 질문에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과 조언을, B는 아마 셀 수 없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 말을 한 순간, 나 역시 B가 숱하게 겪어 온 여러 어른 중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대화 이후에도 B의 생활에는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복도에서 걸어갈 때 잠시라도 내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때때로 나는 과장된 표정을 짓고, 일부러 B의 어깨나 등을 가볍게 두드리기도 했다. 한번은 체육대회 날 홀로 교실에 앉아서 점심을 굶고 있는 B를 보았다. 나는 컵라면에 물을 부어 B에게 가져다주었다.
‘먹고 잘 치워라.’
내 말에 B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번도 벗지 않았던 마스크를 벗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날이 처음이었다. B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본 것이.
지금, B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차 안에서의 짧은 대화와 컵라면 하나로 B가 바뀌었을 거라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무기력한 그 학생이 이 짧은 관심만으로 바뀔 수는 없다. 학년이 바뀌고 진급하는 그날까지, B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아주 가끔 과제를 제출했다거나 시험 시간에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정도의 변화는 엿볼 수 있었다.
지금 B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더 B와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컵라면을 나누어 먹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무기력은 쉽게 나오기 어려운, 깊고 어두운 동굴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명확한 답은 없다. 그래서 고민도 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