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안과 두려움 속의 교사들

불안의 근원

by 소소인

불안과 두려움에 둘러싸인 교사들


교사는 질투받는 직업이다. 정해진 퇴근 시간, 긴 방학, 직업의 안정성, 사회적으로 받는 인정. 하지만 교사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부러움의 요소들 아래로 짙은 회색빛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 그 회색의 실체는 바로 '두려움'이다.


이 감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교사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수업에 임하는 교사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학생들, 학부모의 민원전화, 미디어에 연이어 보도되는 자극적인 사건들. 교사들은 이들을 접할 때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구심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이 종종 불안과 두려움이 되어 교사의 뒤통수 한구석에 자리 잡는 것이다.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들은 학교에 어떤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을까. 그들을 곱씹어 보는 일은 학교의 균열이 가진 실체를 밝히는 데 의미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수업, 두려움이 된 일상

나는 매일 수업을 한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대부분을 교실에서 보낸다. 한 교시에 50분. 이 50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날 하루의 감정들을 좌우한다.


종이 울리면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교과서와 학습자료, 분필을 들고 수업이 예정된 교실을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그때부터 그날의 50분이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교실을 들어서면 건네는 짧은 인사. 학생 중 몇몇은-고맙게도-인사에 응답을 한다. 교실에 들어서면, 출석을 확인한 후 학생들의 눈빛을 살핀다. 항상 만나는 학생들인데도, 매시간 분위기가 다르다. 어떤 날은 둥둥 떠 있고, 어떤 날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하다. 또 어떤 날은 다 함께 슬픈 영화라도 본 듯이 풀이 죽어 있다. 그날의 분위기를 살핀 후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후, 분필을 잡는다. 이제 수업 시작이다.


몇 년 전부터 학교에는 전자 칠판이 보급되었다. 미리 준비하면 전자 칠판에 자료를 띄울 수 있고, 그 위에 판서를 할 수도 있다. 다만, 분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질감과 소리는 없다. 나는 아직 그 질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흰색과 빨강, 초록색 분필을 가지고 수업한다. 글씨는 화면에 띄우기보다는 인쇄된 것을 읽게 한다.


이런 내 수업을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종종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의외로 학생들은 전자 칠판보다 분필을 선호한다. 큰 차이가 없다고 하는 학생들은 보았지만, 분필을 내려놓고 전자 칠판으로 바꾸어 달라는 학생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 질감이 아직 학생들에게도 유효한 것일까.


나름의 소신으로 분필을 쥐고 있지만, 교실을 향하는 발걸음에는 늘 두려움과 긴장이 묻어 있다. 가장 많은 시간 준비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수업이다. 같은 내용으로 열 번, 스무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업을 해온 지 15년이 되었지만, 수업은 여전히 어렵다. 그리고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교실에서 깨진 꿈


수업에 들어가면, 잠자는 학생들이 꼭 있다. 당연하다는 듯, 그리고 당당하게 잠들어 있는 몇몇 학생들. 책상에 노크하거나 부채를 가져가서 바람을 일으켜 잠을 깨운다. 교실을 한 바퀴 돌며 분위기를 전환하기도 한다. 그래도 소용없다.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엎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들을 보면 기운이 빠진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수업에 참여하지 않니’

대답은 여러 가지다.


‘그걸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혼자 해도 되고,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로 충분해요’

‘어제 늦게 자서 졸려요’

‘저는 대학 안 가요’


어떤 대답이든, 수업에서 다루어지는 지식이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내가 분필을 들고 써 내려가는 모든 것이, 이 학생에게는 ‘쓸모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게다가 재미도 없으니, 도저히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학생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선생님 수업이 졸려요’


이 솔직하고 당당한 말 앞에서, 나는 대꾸할 말을 잃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수업에 대한 고민이야 교사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고, 재미있는 수업은 모든 교사의 꿈이다. 그 꿈을 산산이 조각내는 이 말 앞에서, 나는 성숙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부족해. 그래도 수업이니 해 보자’

나는 이렇게 학생을 어른 후에 다시 분필을 잡았다. 물론, 내가 분필을 잡아 올리는 사이에 그 학생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매일 몇 시간씩 이루어지는 이 수업 앞에서, 나는 등대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된 기분이다.

학생들의 이런 면면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인터넷 강의는 수업의 요점을 시험에 맞추어서 간략히 설명하고 있고, 기법도 화려하다. 그리고 학생 중에는 학교의 경쟁 시스템에 지쳐서, 그리고 뜻하지 않게 패배자의 위치에 몰려서 학업을 포기해 버린 이들도 많다. 이 상반되는 두 학생에게 수업이란 그저 의미 없이 지나가는 불편한 시간일 따름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학교의 규칙’이나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앞세워 눈을 뜨라고 하는 건 한계가 있는 설득이다.


머리로 이해한다 해도, 눈앞에서 잠든 학생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수업은, 교사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고 때때로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생이 잠잔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잠자는 교실에서의 수업은, 마치 관객 없는 무대에서 홀로 노래하는 가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계속>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10화육중해진 무기력, 깊게잠든 학생B-5(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