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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두려움 속의 교사들-3

두려움 너머

by 소소인

두려움이 만든 학교의 균열


교실로 향하는 나는 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크기와 색깔은 매일, 매시간 변했지만 두려움의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항상 명확했다. 그것을 때때로 발전을 위한 자극이 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발목을 잡는 감정이기도 했다.


교사들에게 학교는 삶을 지탱하는 생업의 공간이기도 하다. 생업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수업과 평가 방법, 외부 인솔을 해야 하는 체험활동이나 수학여행을 기꺼이 수행하고자 하는 교사가 얼마나 있을까. ‘힘들고 부담스러운 업무’와 ‘위험한 업무’는 성격이 다르다. 그리고 이 두려움의 기제들은 모두 현실 속에 실재하는 것들이다.


이런 풍토는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단지 지식을 ‘전달받는’ 존재에 머무르게 되고, 수업은 점점 더‘형식적인 전달’의 장으로 축소된다. 모험적인 시도가 없는 교실은 학생들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의 크기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하여


첫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교직 사회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다. 교사의 수업과 판단, 관계 형성을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노력, 혹은 전문성의 발휘라고 생각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학교의 교사들에 대해서 최소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에 통용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 많은 교육적인 시도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드라마와 영화, 뉴스는 교사를 너무 희화화하거나 극단화하지 말고 학교를 둘러싼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묘사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를 향한 사회의 대화들이 교사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난, 또는 옹호만으로 채워지지 말고 건설적인 생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까?’가 학교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이어야 한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국가의 제도가 보호해 주어야 한다. 특히 불가항력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교사에게 지나친 책임을 묻는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상황을 교사가 통제해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그 책임이 ‘법적’으로 지워지는 일은 교사에게는 생업을 잃을 수도 있는, 정말로 깊은 두려움의 원천이 된다.


교사의 역할을 다시 정의 내려 볼 필요도 있다. 직업의 덕목과 역할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결정된다. 교사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한 축이므로 이 논의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해서 토론할 만한 주제다. 나는 교사가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활지도와 정서적 상담, 진로지도, 행정업무, 수업.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온전히 감당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교사의 역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눈높이에는 조금의 여유가 필요하다.


물론 신뢰를 얻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 노력이 이어지고 또 알려진다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믿음 속에서, 교사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두려움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 마음이 줄어드는 만큼 학교의 균열도 조금씩 옅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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