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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앞에서 무너진 글쓰기

쓰지 않아도 쓰여지는 글

by 소소인

C의 글, C의 발표


C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성적은 중간 정도였고 수업 시간의 태도도 그랬다.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시간 잠드는 학생도 아니었다. 30명 중 20명 정도에 해당하는, 그런 학생.


C에게 수행평가 과제가 제시되었다. 주제는


‘가상으로 떠나는 역사 여행 기행문 쓰기.’


아시아의 여러 유적지 중 가볼 만한 곳들을 고른 후 상상으로 그곳을 여행한 여행기를 작성한 후 그 내용을 발표하는 과제였다. 고등학교에서 흔히 시행될 만한 수준의 과제다. 이 평가의 핵심은 글쓰기다.


C의 글은 깔끔했다. 공손한 존댓말에 문맥은 부드러웠고 표현은 과하지 않게 절제되어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오류는 없었고, 추론과 상상은 그럴듯했다. 글의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다. 친구들에게 역사 여행을 함께 하자는, 그리고 토론을 이어가자는 건설적인 제안. 수행평가의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하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글이었다. 참고한 문헌의 수준은 놀라웠다. 내가 대학생 때 전공 수업에서 읽었던 책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정말 C가 썼을까?


C의 발표는 간단했다. 자신이 쓴(?) 글을 가지고 나와서 그대로 읽고 들어갔다. 발표 시간을 준수했고 그 내용은 글에 쓰인 대로 유창하고 부드러웠다. 발표를 들은 친구들은 형식적인 박수를 쳐 주었다. 발표 역시 평가 기준안을 모두 만족시켰다.


교실에는 20여 명의 C들이 있었다. 그들의 글은 모두 매끄러웠고, 발표는 단순했다. 나는 모두에게 만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


GPT가 만든 수업의 균열


수행평가에는 여러 의도가 들어있었다. 먼저, 아시아의 유적지를 조사하면서 지식을 쌓는다. 조사한 여행지를 가상으로 여행하면서 상상력을 기른다. 그리고 그 결과를 종합해서 글로 표현한다. 그리고 쓴 글을 토대로 발표하며 친구들과 경험을 나눈다. 이 모든 배움의 과정을 종합하는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지식과 상상을 종합하고 그것을 체계적인 언어로 구성하여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C는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C의 글이 GPT의 작품임을 주장하지도, 증명하지도 못했다. GPT의 글은 모두에게 다르게 출력되기 때문에 무언가를 베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학생들은 스스로 쓰지 않은 글을 제출하면서도 평가에서 감점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글을 쓰면서 겪어야 할 학습의 마지막 단계, 그 가치 있는 경험이 GPT가 글을 작성하는 그 1초 만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C는 어려운 과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데다가 평가에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 편리한 도구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양심의 파괴다. GPT는 수많은 C들을 부정행위로 이끌었고, 동시에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점수를 받았다면, 그것은 부정행위나 다름없다. C는 이 수행평가에서 어떤 수행도 하지 않았고, 무엇도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점수는 만점이었다. 나는 C의 부정행위를 뜬 눈으로 지켜보았으면서도 그것을 제지할 수 없었다.


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의 과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 뛰어난 학생이 직접 쓴 글이 있다고 해도, GPT의 그것들과 섞여 있으면 ‘본인이 쓴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된다. 거의 모든 글이 인공지능의 손끝에서 태어나니 좋은 글이 반대로 표절 의심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더 있다. 학생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려 해도 본인이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진다. 학생이 교사에게 글쓰기를 배울 기회를 빼앗기는 것이다. 학생들은 개별지도의 경험을 오래 간직한다. 그리고 글쓰기는 대표적인 개별지도의 영역이다. 나는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많은 편지를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첨삭’이었다. 수업 시간에 잠드는 학생들도, 개별적으로 받은 첨삭은 특별하게 받아들였다. 첨삭은 학생과 주고받는 편지다. GPT는 그 편지의 송달을 가로막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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