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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앞에서 무너진 학교의 글쓰기-2

C의 정 반대에 있는 D

by 소소인

잊을 수 없는 학생 D


학생 D. 그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학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언어적 능력을 갖춘 학생이었다. D는 교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어찌 보면 이상적인 학생이었다.


나는 D와 일주일간 매일 토론과 글쓰기 수업을 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 환경문제와 자본의 이익,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구조, 뉴 미디어와 미디어 리터러시 등. D는 이 문제들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제시한 텍스트들을 순식간에 읽어 나갔으며 그 논쟁의 핵심을 예리하면서도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와 나눈 대화와 토론은 교사인 나를 성장시킨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토론이 끝난 후, 그는 토론의 내용을 주제로 하여 글을 작성했다. 어떤 전자기기도 없이 펜과 종이만을 사용했다. 나는 D의 글을 읽고 글의 맥락과 논리적 맹점, 그리고 주제에 적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관점에 대해 이야기 했다. 수행평가였다면, 수많은 C들이 받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만점이었을 것이다.


D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D가 되었니’

‘중학교 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철학, 과학, 사회학… 종류와 관계없이 읽었고, 어떤 책은 한 권을 읽는 데 몇 달이 걸릴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책은 여러 번 읽기도 했어요.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책들이 있어요.’


나는 하나 더 물었다.

‘글쓰기는 따로 배웠니’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글을 썼고, 선생님들에게 배우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글 하나를 쓰는 데 일주일 넘게 걸리기도 했어요. 가끔은 쓰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곤란할 때가 있어요. 지금 수업에서도, 머릿속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이것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게 가장 고민이에요.’


D의 글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하고 싶은 말과 아이디어나 넘치는 것이 오히려 흠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들을 담느라 논점에서 어긋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D에게 필요한 것은 넘치는 에너지를 정돈하고, 주제가 지나치게 확장되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내용의 깊이였다. 넓고 깊은 독서와 사유에서 나오는 다양한 관점. 그리고 반대되는 의견을 예상할 줄 아는 폭넓은 시야. 이런 것들이 글에 묻어 나왔다. 게다가 청소년 특유의 편견 없는 유연한 사고. D는 때때로 내가 제시하는 반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종종 말하곤 했다.


‘제 생각이 틀렸던 것 같아요’


나는 그것이 글쓰기를 통해 갖추게 된 태도이자 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어들수록 빛나는 D


D와의 만남은 즐거웠고 인상깊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D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우연의 기회를, 학교는 조금씩 잃고 있다.


GPT가 교실을 메워갈수록, 글을 비판하고 해체할 줄 아는 D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글쓰기 능력이 희소해진다면, 미래 사회에서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은 더욱 인정받는 인재가 될 것이다. 희소성은 곧 가치 아니던가.


인공지능이 글을 쓴다. 참으로 유능한 ‘조수’다. 다만 GPT를 ‘조수’로 활용하고 스스로 GPT의 ‘보스’에 자리하려면 주인으로서의 권위를 갖추어야 한다. 그 권위는 GPT의 글을 평가하는 능력에서 온다. 그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조수를 보스로 모시고 다니는 하극상을 면할 수 있다. D는 그 능력을 갖춘 학생이었다.


다만, 모든 학생이 C와 D 중 하나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사실이다. 과제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C였던 학생이 D가 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흥미와 관심, 지식에 따라 학생들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GPT의 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매끄러운 글을 읽으며 글쓰기의 방법을 알아갈 수도 있고,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모두 고려한다 해도 GPT가 학생들을 C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날로 줄어드는 D와 늘어가는 C 앞에서, 아직 학교는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메이는 중이다. 아니, 예전에도 그랬다. 학교가 가진 위치와 구조는 글쓰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오늘의 흔들림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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