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인간이니까
인간 GTP
학교는 GPT 이전에도 글쓰기 교육에 있어 그리 유능한 곳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학교는 수능시험의 준비 기관이었고, 수능은 오지선다의 객관식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글쓰기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자기소개서가 등장하면서 글쓰기의 중요성이 잠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수많은 고3 학생이 머리를 감싸 쥐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나는 온종일 빨간색 펜을 들고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자기소개서를 끝없이 첨삭했다. 학생들이 글쓰기의 고통을 체감하고, 그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인간 GPT’가 등장한 것이다.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자기소개서 대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생활기록부를 가져가면 소재를 정리한 후에 글을 써 주는 서비스였다. 키워드를 주면 매끄러운 글이 나오는 방식이, 오늘날 GPT가 하는 일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면서 자기소개서는 사라졌다.
이런 일이 수행평가에서도 반복되었다. 수행평가로 제출한 글쓰기 과제의 내용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상황이 되자, 그것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그러자 학교는 수행평가에서 과제형을 배제하고 수업 중에 실시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D는, 때때로 글 하나를 쓰는 데 열흘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학교는 이런 몰두의 시간을 허락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인간 GPT와 인공지능 GPT는 학교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 그 본질이 비슷하다. 학교의 기능 중 하나를 망가뜨리고 그것을 보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돈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이 비즈니스는 C와 D,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C에게는 글쓰기의 고뇌를 경험할 기회를 빼앗고, D에게는 오랜 시간 닦아온 글쓰기 능력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든다. 돈 앞에서 균열된 학교의 일면은, 이렇게 모든 학생의 책상에 닿아 있다.
무너진 글쓰기 앞에서
GPT 앞에서 학교는 망망대해에 띄워진 종이배 같은 처지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실히 보이는 것은 없다. 학교의 글쓰기는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지금은 방향을 찾을 때다.
먼저, 학급 인원수가 줄어야 한다. C는 32명 중 하나였다. 끝없이 반복되는 C들의 글 앞에서,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만약 15명이었다면, 나는 제출한 글을 토대로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C는 자신이 제출한 글의 실체를 토로하고,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배웠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GPT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제는 GPT를 써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C가 직접 쓰게 하려면 글쓰기를 수업 중에 해야 한다. 한 문장, 한 문단씩 늘려 가고, 교사가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한 학급에 30명씩 있어서는 안 된다. 학생이 적을수록 지도는 자세해진다.
평가에 포함되지 않는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상적인 길이지만, 그만큼 현실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생과 GPT를 쓰지 않기로 약속한 후에 과제형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D가 그랬듯, 깊이 있는 글쓰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D가 써 온 쓴 글들은 수행평가도 아니었고 입시 논술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D의 글을 만들었다.
GPT를 활용하되 먼저 스스로 글을 완성한 후 같은 내용 요소로 GPT가 산출한 글과 비교하는 수업을 할 수도 있다. 글에는 저자의 의도가 명확해야 하므로 자신의 관점과 내용이 있어야 GPT가 산출한 글과의 차이를 온전히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아는 것이 있어야 하고 의견도 있어야 할 것이다.
GPT가 조합한 글을 학생이 직접 첨삭하고 평가하는 수업도 필요하다. GPT 시대에는 글의 초안을 잡는 시간이 매우 단축된다. 그러나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언어의 논리를 갖추었을 뿐, 현실성 없는 글 아닌가?’
‘그럴듯한 수식어들이 이어져 있을 뿐, 알맹이는 없는 글 아닌가?’
‘한 가지 관점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기준들을 가지고 글을 직접 평가해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은 GPT의 주인으로 자리 잡기 위한, 그리고 글 쓰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한 훈련이기도 하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지금 학교에는 새로운 C가 매일 태어나고 있다. 머리도, 손가락도 쓰지 않고 글을 제출하는 새로운 시대. 이 과정에는 사고가 없다. 그래서, 그 글은 C가 쓴 게 아니다. 인공지능이 단어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글을 ‘배치’하는 이 비트 세계의 데이터 처리 과정에, C의 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가까이에 있지만 인간과 별개의 존재다.
인간은 0과 1의 디지털 부호로 변환되지 않는다.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라 피와 살, 뼈로 이루어진 존재다. 아날로그의 세상에서 두 다리로 걸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쓰고, 또 써야 한다.
여전히, 인간이니까.
<GPT앞에서 무너진 학교의 글쓰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