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분노
A의 분노
A는 수업 시간에 늘 다른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지적을 받으면 텅 빈 눈으로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칠판을 바라보는 A의 눈빛은 허무감과 알 수 없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은 많다. 하지만 칠판에 이런 눈빛을 보내는 학생은 흔치 않다. A와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왜 수업에 참여하지 않니?’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요. 공부하는 친구들은 똑똑한 노예가 되는 길을 가고 있는 것뿐입니다.’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니’
‘이 책이요(자기계발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동의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선생님도 알고 있어. 하지만 학교 공부를 성실히 하는 친구들이 ‘똑똑한 노예’가 된다는 말은 사실과도 맞지 않아. 학교 공부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더 많은 가능성을 얻을 수 있는 일이야.’
A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똑똑한 노예’라는 말에 압축된 의미들은 여러모로 시리게 다가왔다. ‘일’의 가치가 오로지 돈으로만 환산되는 현실. 사람을 고용주와 노동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세계관. 경쟁으로 가득한 학교와 사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사장님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똑똑한 노예가 되는 길일 뿐’이라는 말은 세상의 냉혹함이 뭉쳐진 거대한 회색빛 돌덩어리 같았다.
어떤 책이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읽어주었을까. 제목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그 책의 핵심은 기존의 다른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것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너의 사업을 해라.’(고용주가 되어라)’
‘투자해서 자산을 가져라.'(주식이나 부동산을 소유해라)’
‘학교에서는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서점가에서는 ‘자기 계발’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학교 도서관에도 자기 계발에 관한 책들이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학생들이 자기 계발 콘텐츠의 논리에 노출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자기 계발 콘텐츠가 책이나 TV 프로그램, 유튜브 영상을 넘어서 1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으로 압축되어 유통되고 있다. 자기 계발의 메시지는 스마트기기 이용자들의 시간을 탐내는 콘텐츠의 한 축이 된 것이다. 범람하는 자기 계발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A가 가진 분노의 눈빛 너머에 자리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무모한 단순화와 일반화
자기 계발 도서와 영상은 그 종류가 너무 많아서 대표작을 꼽기 어려울 정도다. 다만, 그들이 공통으로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있다. 그들은 모래성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파도 한 번이면 무너져 내린다. 그 성에 내걸린 표어들을 살펴보면, 과연 A를 들여보내도 될지 의문이다.
먼저, 자기 계발 콘텐츠들은 성공을 이루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강한 확신을 보이고, 그것을 무모하게 일반화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일찍 일어난다.’
‘이 습관 하나로 인생이 바뀐다.’
‘남들이 1시간 하면 너는 2시간 해라.’
키워드는 콘텐츠마다 다르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이것들만 지키면 인생에서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다.
그러나 학생들은 개인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며 객관적으로 처한 환경의 차이도 크다.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라는 간단한 생활 습관조차 건강상의 이유, 혹은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지킬 수 없는 학생들도 있다.
자기계발서들이 자신 있게, 아니 용감하게 제시하는 이 몇몇 원칙들은 -당연하게도-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모든 성공은 그 이유가 다르다. 운에 달려 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거나 시대의 변화와 관련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일찍 일어나기를 비롯해서 몇 가지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은 성공에 필요한 여러 조건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성공을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자기계발서들은 특별한 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으로 포장한다. 자기계발서들의 구조를 보면,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고 그들의 특징을 추론하는 방식의 구조를 보인다. 스티브 잡스나 데일 카네기, 버락 오바마 같은 사람들이 단골손님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랐던 환경과 문화는 그 책을 읽는 독자들과는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상반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타고난 기질과 신체적인 조건들이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가 스티브 잡스와 똑같이 살아간다 해도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성공한 사람들이 공유한다는 특징들 또한 자기 계발 콘텐츠를 쓴 사람들의 주관적인 관점이 투영되어 있거나, 아주 일반적인 자질(예를 들면 성실한 사람이라는 정도)인 경우도 많다.
삶에 대한 A의 말은 단순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투자를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A의 행동과 능력에는 변화가 없었다. A는 그대로 A였다. 칠판을 바라보는 분노의 눈빛과 책상에 엎드린 뒤통수의 당당함 말고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