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자기계발
A의 자기 계발
학기 초부터 연말까지, A는 한결같이 수업 시간에 다른 책을 읽었다. 때로는 영어 학습지를 꺼내 놓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내 분필 끝에서 칠판에 옮겨지는 지식들은 그야말로 시간 낭비로 여겨지는 듯 했다. 나는 A를 설득하지 못했고, 교실에 앉아 있는 또 다른 학생들을 향해 분필을 휘젖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연말이 되었을 때, A를 다시 보았다. A는 잠들어 있었다. 책상 위의 자기계발서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물어보았다.
‘책을 읽어 보니, 삶이 바뀐 것 같니’
A는 힘없이 말했다.
‘아니요. 저는 이 책이 말하는 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당시의 나는 대꾸할 말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니야. 그건 네 실패가 아니라, 그 책의 실패야.’
책에서 영상으로, 그리고 짧은 영상으로
나는 학생들의 휴대폰에 관심이 많다. 어떤 영상을 보는지, 게임을 하는지. 도박을 하지는 않는지… 휴대폰은 그 주인의 많은 것을 반영한다. A의 화면에는 종종 자기 계발의 내용을 담은 짧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나는 그 영상을 함께 보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슈퍼카를 탄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되었나요?’ 남자는 대답했다. ‘간단해! 고객이 원하는 걸 팔면 돼. 네가 원하는 것 말고!’
영상은 이렇게 끝났다. 그 안에서, 성공은 쉽고 간단했다. A는 그것을 익숙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진 자기 계발 콘텐츠는 경제적 성공에 대한 이미지를 강렬하게 보여주고 그것이 아주 짧은 시간에 성취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그 방법은 단순화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노력과 고통, 실패의 시간은 전부 생략되어 있다. 오늘날의 시대가 가진 자본주의적 욕망을 강한 이미지와 함께 충족시키는 것이다. 매우 자극적이며, 중독성 있는 콘텐츠다.
이 영상들의 또 다른 문제는,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자기 계발 콘텐츠들은 대부분 책이나 긴 강연이었다. 그래서 그 논리를 접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그나마’ 있었다. 하지만 짧고 강렬한 영상은 순간적으로 감각을 자극한 후 금방 휘발되어 버린다. 비판적 수용의 기회가 훨씬 적은 것이다. 짤막한 콘텐츠는 밤을 새우는 사유나 진지한 토론을 낳기 어렵다.
나아가, 학생들은 이런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 알고리즘은 비슷한 성격의 콘텐츠를 반복해서 추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짧은 영상들을 반복해서 시청하다 보면 그 콘텐츠의 메시지를 진리인 것으로 착각하며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성공에 대한 단순하고 강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학생들은 화면 속의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를 대비하고,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게 될 수 있다. 행동의 변화와 성취는 짧은 영상의 길이처럼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콘텐츠가 진취적이고 희망적이라 해서 그것을 시청하는 결과도 같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영상을 바라보는 A는 무표정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휴대폰 화면 위를 움직였다. 그 뒤에 재생된 영상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음, 그다음 영상도 그랬다. A는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A가 자기 계발 판타지에 빠진 이유
그렇다면 A는 왜 이 논리에 빠져든 걸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우리 사회가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지위에 매몰된 획일화된 성공 기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학교의 울타리 밖에서 만들어진 이 기준들은 이미 학생들에게 익숙하다.
또 하나, 자기 계발 콘텐츠는 판타지 소설 같은 면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 구조를 보면 대략적인 공통점이 있는데,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초라하게, 혹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있다.
2. 그가 어떤 계기로 성공을 위한 비결을 깨닫는다.
3. 방법을 깨달은 그 사람은 큰 부자가 되어 부와 명예를 갖게 된다.
이 공식은 청소년들이 많이 즐기는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플롯이다. 자기계발서는 이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며 유혹한다. 판타지 소설의 현실 버전인 것이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대체로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높다. 이들에게 자기 계발 콘텐츠가 건네는 판타지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판타지는 판타지, 소설은 소설이다. 책에서 그려지는 대단한 성공은-당연하게도-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계발 콘텐츠가 주는 희망의 환상은 대부분 실망이나 망각으로 끝이 난다.
공부 방법을 다룬 자기 계발 서적들도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전교 1등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전제하고 책의 저자가 실천한 여러 방법을 풀어 놓는다. 하지만 그것을 읽는 학생들은 수준과 상황이 전부 다르다. 결국 전교 1등의 수기는 대부분 전교 1등에 대한 가상 체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며 독자들을 유혹하는 그 콘텐츠들처럼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