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무엇을 할수 있는가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기 계발 콘텐츠는 학교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다. 텍스트와 영상을 비롯해서 그 외양도 무한대로 변신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실천적인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기 계발 콘텐츠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이 접한 자기 계발 콘텐츠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그 타당성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해 볼 수 있다.
‘이 영상에서 이야기하는 성공의 비결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영상에서는 돈을 버는 게 성공이라고 하는데, 그 생각에 동의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만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 계발 콘텐츠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갖게 할 수 있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성공의 개념을 토론 주제로 삼는 것도 의미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삶에서 ‘성공’이 존재하는지를 주제로 토론하는 것이다. 만약 성공이 삶의 목적이고 어떤 상태나 행동을 성공으로 정의한다면 성공 이후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성취가 성공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이미 5살에 성공을 이룬 아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또한 이 세상에는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삶은 통째로 실패라고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자기 계발의 논리 하나하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토론을 해 볼 수도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자기 계발 콘텐츠가 말하는 실패의 책임은 어디까지 개인에게 있는가.’
‘숏폼 자기 계발 콘텐츠의 내용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인가.’
이러한 활동들은 근래에 교육계에서 강조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일환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강한 자기 확신과 자극적인 색채로 무장한 쇼츠 영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자기 계발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토론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들을 향한 방어막을 만드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서관을 돌아보며
한 가지 더 고민해 볼 문제는 지금처럼 학교 도서관에 자기계발서를 계속 비치해 두어도 괜찮은가에 대한 문제다. A는 자기계발서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 학생이 학교에서 자기 계발 도서를 읽는다.
자기계발서가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합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아직 교육 자료로서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부모님들은 마트에서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사줄 때 거기에 들어 있는 성분들을 꼼꼼히 확인한다. 행여나 해로운 성분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건강을 위한 음식을 굳이 불편을 감수해 가며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학생들의 정신에 큰 영향을 주는 책을 고르면서 별다른 고민 없이 ‘인생을 바꾸는 **가지 법칙’ 같은 책을 도서관에 놓아둔다. 자기계발서의 목차와 그 내용의 대강을 확인하는 일은 아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장바구니에서 빼내듯,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자기 계발의 논리는 우리 사회에 흐르는 여러 이야기의 기둥 중 하나다. 너무 일반적이어서 때로는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와 전달의 형식이 학교에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한 번 돌아볼 시점이다. 자기 계발이 학교에 미치는 영향은 열정일까, 아니면 균열일까.
내 귀에, 그것은 학교의 기둥이 갈라지는 파열음으로 들려온다. 분노가 담긴 A의 눈빛은 말했다. 그것은 학교의 균열이라고.
<자기계발콘텐츠, 학교를 흔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