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교복과 현실의 생활복 사이
선남선녀들이 모인 교실에 단정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질서 있게 앉아 있는 모습. 학교 드라의 단골 장면이다. 하지만 교복은 생각보다 불편한 옷이다. 셔츠와 넥타이, 자켓과 정장바지(또는 치마). 게다가 요즘 교복들은 학생들의 몸에 딱 맞게 맞추어지는 경우가 많다보니 오랜 시간 앉아서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불편 그 자체다. 학생들은 대부분 성장기여서 1학년 때 맞춘 교복이 2,3학년이 되면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생활복을 착용하거나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생활한다.
헤어스타일이나 화장에 있어서도 평범한 학생들의, 수수한 모습이 훨씬 많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두발과 화장, 복장에 대한 규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학생들의 외모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전체적인 외양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 과거에 두발규제가 처음 사라질 때만 해도 학생들의 머리색이 온통 울긋불긋해질 거라는 걱정(?)이 많았지만, 그런 학생들은 오히려 찾아보기가 어렵다. 외모에 있어서, 학생들이 선택한 것은 결국 생활하기 편안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중-고등학교 때 외모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자란 세대가 많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학교란, 스포츠머리의 남학생, 단발머리의 여학생들이 가지런히 앉아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런 모습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오늘날 학생들의 대부분은 편안한 생활복에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책상에 앉아 있다. 규율은 사라졌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단순화게 빚어진 학교 속 캐릭터들
학교 콘텐츠에서 가장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학생들에 대한 묘사다. 성인 배우들이 교복을 입고 어려보이는 분장을 한 채 연기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학생같아 보이지 않는 행동과 대사들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나이는 16~19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성인이 있다면 자신이 16살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그 나이대의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오늘날의 드라마나 영화에 얼마나 반영되어 있을까.
아직 때 묻지 않은 나이인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온라인 콘텐츠로 넘어오면서 교복입은 성인들의 무한 혈투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용의주도하고 무자비한 조직폭력, 스릴러 영화의 악역에 가까운 학교폭력 가해 학생 등 교복입은 성인들의 악마적인 모습은 학생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잣대에 정면으로 반하면서 더욱 극단적으로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치 도덕적으로 선해야 하는 성직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 범죄가 더욱 악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또한, 콘텐츠 속의 학생들은 완전히 정립된 정체성을 가지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일관성 있게 나아가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대학진학, 정의의 구현, 때로는 좀비로부터의 생존 등등. 하지만 청소년기 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이다. 날마다 기분이 변하고, 목표도, 수업시간의 태도도 한 달 한 달 다른 것이 청소년기 학생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콘텐츠 속의 학생들에게는 '방황과 갈등'이 별로 없다. 이것은 어른들의 판타지를 학교에 녹인 결과인 동시에 작품의 극적인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이유야 어쨌든 화면속의 학생들은 외모 이외에는(가끔 그 외모도 이질감이 크긴 하지만)학생같아 보이질 않는다.
학교의 학생들은 매일 아침 등교하면서 지각을 걱정 하고, 방과 후 먹을 간식 메뉴를 고민하며, 수업 중 몰래 SNS를 확인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학생들의 대화를 살짝 엿들어 보자. 지금의 어른 세대가 열 여섯살에 나누던, 바로 그 대화를 지금의 학생들도 따라서 하고 있다. 학교의 어떤 시간이 너무 졸립다. 점심 급식이 맛있었다. 학원에 가기 싫다. 학교의 어떤 남학생/여학생이 있는데, 외모나 성격이 어떻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떻다 등등. 우리가 추억하는 청소년기의 그 소소하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중요했던 그 관심거리들. 어른의 눈으로 돌아보니 별것 아니었던 그 걱정들. 이들은 여전히 학생들의 일상이요 가장 중요한 일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