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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안의 도박장

온라인 도박의 교실침투

by 소소인

가짜 도박이 진짜 도박으로


수능이 끝난 12월. 고3 교실에서는 장난기 넘치는 학생들이 학교에 화투나 카드를 가지고 와서 선생님 몰래 도박판을 벌이곤 했다. 개중에 좀 ‘논다’ 하는 아이들은 진짜 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꿀밤이나 손목 때리기를 하는 귀여운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진짜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명 '퍽치기'라고 해서, 교과서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손으로 책을 때려서 동전들이 전부 같은 면이 나오면 따 가는 게임이었다. 익살스러운 학생들 몇몇은 이 퍽치기로 동전을 한 주먹 모아서 매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퍽치기를 하다 적발된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학교에서 도박을 한다며 호되게 혼이 났다. 기껏 나누어 준 교과서를 도박의 도구로 쓰다니. 당시의 정서로는 이해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 학교에서의 도박은 이 정도의 깜찍한 놀이나 게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도박의 공간이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 도박은 놀이가 아니라 어른들이 벌이는, 사전적인 의미의 바로 그 도박으로 바뀌었다.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도박은 범죄의 현장이 가진 긴장감을 가진 단어가 된 것이다.

A의 비극


A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때때로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절친한 친구들 몇몇과 잘 어울리고,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른다. 눈에 띄는 모범생은 아니지만,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 학생이다.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이 재미있는 게임을 해 보자며 사이트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친구는 학생을 소개하면 자신은 게임 포인트를 받을 수 있고, 너는 가입 축하 포인트를 받아 공짜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게임에서 이기면 실제 돈을 벌 수 있다고도 했다. 주변에는 천만 원 가까운 돈을 번 사례도 있다고 했다. 용돈이 늘 부족했던 A는 게임을 해 보기로 했다.


게임의 규칙은 단순했다. 화면에 나오는 카드의 무늬 개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맞추는, 50%짜리 확률 게임이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연달아 돈을 땄다. 단 10분 사이에 5달 치 용돈을 벌었다. 눈이 동그래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공부를 왜 하는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단 딴 돈 중 일부를 인출해서 평소에 사고 싶었던 무선 이어폰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사이트에서 딴 돈을 인출하려면 2주를 기다려야 했다. A에게 2주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이왕 돈을 딴 김에 게임을 좀 더 해 보기로 했다. 쉬는 시간 10분마다 게임에 몰두했다. 수업 시간, 선생님의 이야기는 귀에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홀과 짝, 둘 중 무엇을 고를지를 떠올리며 50분 내내 가상의 게임 속에 빠져들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자신이, 친구들이 미련해 보였다.


다시 게임에 몰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에서 이기는 횟수는 줄어들고, 돈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처음에 받았던 돈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A는 자기가 갖고 있던 돈을 사이트에 넣어 충전했다. 몇 번만 다시 하면 곧바로 몇 달 치 용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A는 10분 만에 한 달 치 용돈을 다 잃고 말았다.


A는 생각했다.


‘게임 몇 판만 하면 한 달 치 용돈은 회복할 수 있을 거야. 본전은 찾아야지.’


하지만 A에게는 돈이 없었다. A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기로 했다. 빌린 돈으로 몇 게임을 해서 용돈을 다시 벌고, 돈도 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A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결국 돈은 조금씩, 꾸준히 줄어들었다. 결국 A는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었다. A는 친구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A를 의심했고, 결국 돈으로 인해 친구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A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도박을 한 자기 자신이 밉기도 하고, 돈을 잃은 자신은 더욱 미련해 보였다. 무엇보다, 무책임하게 돈을 빌리는 바람에 친구들을 잃은 게 가슴 아팠다.


급기야 A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댄 것이었다.


‘큰돈을 걸고 한 번만 게임에 이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거야.’


이렇게 생각한 A는 결국 부모님의 돈을 훔쳤다. 그리고 그 돈 마저 잃고 말았다.


세상이 온통 깜깜해진 것 같았다. A는 이제 공부도, 친구도, 부모님도 다 잃게 된 것 같았다. 그보다 끔찍했던 건, 그럼에도 도박을 멈출 수 없는 자신이었다. A는 하루 종일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거나, 또는 그 화면 속 장면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A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금의 A에게, 그 길은 요원해 보였다. A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치료였다.


집요하고 악랄한 도박 사이트


A의 돈은 디지털 도박장의 운영자에게 빨려 들어갔다. 지금도 제2, 제3의 A가 우정과 신뢰를 잃은 대가를 도박 사이트에 쏟아 넣고 있다. 그 액수는 상황에 따라 수천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도박의 현장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통제하기도 어렵다. 도박의 공간이, 가장 공적인 공간인 교실에서 가장 사적인 공간인 스마트폰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도박 사이트가 학생들을 현혹하는 방법은 집요하고 악랄하다. A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도박은 주로 친구 관계를 매개로 확산 된다. 또는 음란물과 연계시키거나, SNS의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사이트에 접근하도록 하는 방식도 있다. 그 이후에는 공짜로 도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약간의 포인트를 준다. 초반에는 돈을 딸 수 있도록 설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무조건’ 돈을 잃게 되어 있다. 도박이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개발자에 의해 확률이 조작되는 것은 너무도 쉽고, 또 당연한 일이다. 도박 사이트의 시스템은 희망의 덩어리를 주고, 그것을 조금씩 무너뜨리며 절망에 이르도록 구성되어 있다.


나는 때때로 돈을 크게 딴 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큰 문제다. 실체는 없는데 이야기만 있는 도박 사이트의 성공담들. 이것은 새로운 가입자를 늘리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그런 성공담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도박에 가까운 코인 투자로 일확천금을 얻어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신화에 흔들리는 성인들도 허다하지 않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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