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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Mar 22. 2023

08 우리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자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살 한 줄기가 자고있는 당신의 콧등을 밝혔다. 어제 마신 와인 탓인지 듣기 좋은 새소리 덕인지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보였다. 햇살이 머금은 당신 얼굴이 너무 좋다 못해 이 사람이 내 남자라는 사실이 유난스럽게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한 아침이었다. 시시콜콜 우리의 연애사에 많은 스토리가 있었지만 그저 별거 아닌 소문처럼 치부될, 마치 우리의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인듯한 소설 같은 생각도 해봤다. 서로의 삶으로 물들어감에 각자의 자아를 인지하는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이어 육체적 교감이 지난 자리는 보다 무거운 관계의 추가 올라간다. 마주 앉아 이제는 모든 나를 보여주고파 숨겨두었던 비밀들을 하나 둘 풀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막 문을 힘껏 열어준다. 어서 와 나의 세상으로. 하나의 세상에 또 다른 세상을 받아들이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면 쉽사리 깨트릴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 형성된다. 특별한 우리가 되는 시간, 여행은 이러한 사랑의 과정을 속성으로 이뤄준다. 한 뼘 더 서로에게 가까워지게 한다. 사랑이 고조되어 간다.



 친구의 결혼식날 읽어준 축사 마지막에 항상 여행 같은 삶을 살자 말했었다. 낭만적인 여행만을 뜻하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빗줄기에 당황터라도 함께 비바람을 이겨낼 용기를 키우고, 메마른 사막을 걷다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늘 곳곳에 숨은 행복을 기억하자고. 낯선 공간에서의 움직임은 모두 도전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간에 당신까지 더하면 여행이 그저 보고 듣는 그 이상의 것들을 알게해준다. 당신의 사소한 습관을 엿볼 수 있고 사뭇 행복에 겨워 우리의 미래를 천천히 말해볼지도 모른다. 낮잠을 한바탕 푸욱 자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러 나갈지, 체력이 남아있을 때 힘껏 놀고 이른 저녁을 맞이할지 미처 다 알지 못한 서로를 알아간다. '회에 소주 한잔 어때?', '다 먹고 바다 보며 걷자', '환상적인 일정이네' 별거 아닌 선택에도 역시 당신과 나는 둘도 없는 사이임을 또 한 번 확신해 버리는 순간들이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면 민망해 차마 못했던 이야기들이 오간다. '당신이랑 이곳에 오니까 정말 좋다', '나도 오늘 이 바다를 잊지 못할 것 같아' 당이 과하다 못해 지금 당장 쇼크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달달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집 앞 고기집에서 쉽사리 나오지 않았던 무거운 이야기도 한 덩어리씩 튀어나오고 빈 잔에 사랑과 위로와 용기까지 꾹꾹 담아 따라주던 시간들. '당신과 더 많은 것을 함께하고 싶어', '당신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야'.


 아직은 차가운 밤 바람이 무색하게 당신과 나는 얇은 겉옷만 걸치고 모래사장 한가운데에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잠에서 깼다. 벌써 해가 떴냐며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내 얼굴 보고있었어?라는 당신의 질문에 차마 부끄러 말해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오늘에 와서야 말해줄걸 아쉬워진다. 돌아오는 길,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제 밤보다 꽤 포근했다.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 당신과 나는 또 한 겹의 추억을 쌓았음에 뿌듯해했다. 낯선 곳의 낯선 식당, 낯선 카페 그리고 낯선 바다. 그 수많은 낯섦 속에서 유일한 익숙함은 바로 당신뿐이었다. 바로 나뿐이었다. 하루의 시간을 긴 인생으로 늘여놓고 보면 하루하루 낯선 시선들 속에서 오로지 나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익숙한 시선의 존재가 크나큰 위안이 된다. 그러한 존재로, 그러한 관계로 내게 오래 머물러주길 바라는 날들이었다. 당신과 떠난 여행들은 말이다.



 바쁜 사회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곳저곳 많이 여행 다니자 말한다. 돈 아껴 집도 사야 하고 시간 쪼개 책도 읽어야하고 미뤄둔 옷장정리도 해야겠지만 당신과 보내는 이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계절이다. 비관적인 말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를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은 내가 걸어온 숱한 걸음들이기에 사랑하는 이와 거닌 고즈넉한 바닷길은 때때로 퍽퍽한 하루를 버틸 걸음이 되어준다. 사랑이 함축된 여행에서 관계의 결속력과 삶의 원동력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그땐 그랬지 함께 떠올릴 옆 자리의 당신일수도, 안개를 걷히고 혼자 떠올릴 과거의 당신일수도 있지만, 아무렴 어때. 이미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해버린 걸.


 대단히 멋진 곳이 아니어도 좋다. 미세먼지가 난무하지만 그럼에도 따스한 바람이 저 언저리에서 불어온다. 많이 챙길 것도 없다. 떠나자.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어디든 떠나보자.


 당신의 걸음을 더하러. 우리만의 세상을 쌓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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