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셈케이 Mar 09. 2023

06 잘 싸워봅시다




 역설적인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억지스럽지 않은 담백한 말을 좋아하지만 유독 나의 연애에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역설이 있다. '잘 싸우는 연애' 잘 싸우기 전에 아예 싸우지 않으면 굳이 싸움을 잘할 필요도 없을테지만 모든 관계를 통틀어 감정의 부딪힘은 불가피하기에 어차피 싸울 거면 아주 잘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연애 초에는 사소한 갈등과 서운함을 적절한 귀여움으로 둔갑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만난 일수가 늘어날수록 상대의 날 선 감정은 때때로 피로함을 주는 요소로 변질되어 간다. 익숙하고 편하기에 그저 사소한 서운함은 알아서 눈감아 주길 바라는 것이다. 갈등은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본인의 기준에는 '고작 그런 걸로?'일지라도 상대에겐 '이건 정말 서운하잖아?'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도통 납득 가지 않는 상황에 반감이 생긴다.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인 상대의 생각을 바로잡아주거나 그걸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탓하기 전에 우선 상대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을 스스로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자. 결코 지는 게 아니다. 사실 완벽히 감정을 납득하기 전에 상대를 포용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면 한 없이 쉽고 어렵게 파고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기 싫은 일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선 받아들이자. '사과'라 쓰고 '이해'라 읽는 그 과정에 인색할수록 얕은 갈등의 골을 삽시간 기하급수적으로 깊어지게 만든다. 미안하다 말하며 상대를 다독여준 뒤 나의 마음은 이러이러했고 그걸 오해해서 당신이 서운해하는 것 같으니 다음에 같은 상황일 때 나의 입장도 조금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라 말해보면 어떨까.


 서운해하는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것, 그리고 그다음 나의 상황과 감정을 덧붙이는 것. 굉장히 간단한 대화법 같지만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상대의 서운함으로 피어난 나의 억울함과 불필요한 감정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기에 그 순간을 이겨내고 상대를 포용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과정을 스무스하게 풀어나가는 유연함의 여부가 더 깊은 관계로 발전 될지 알 수 있는 선명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나의 연애에선 말이다.)


 물론 반대의 입장에서도 역할은 분명하게 있다. 낱낱이 서운함을 모조리 던져 몽땅 이해해 주길 바란다면 단연코 머지않아 상대는 지쳐 나가떨어질게 분명하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상대의 마음을 볼모로 자잘한 감정까지 모두 케어받길 원하는 건 분명 이기적인 면모가 다분하나, 그러한 감정마저 깨끗하게 해소하고픈 마음은 백번 천 번 이해하기에 우리는 늘 나와의 감정과 타협해야 한다. 흘려보낼 수 있는 쉬운 서운함은 재채기 한 번에 날려버리고 흘러도 흘러도 잔류하는 감정은 더 곪기 전에 터트려야 한다. 감정의 완급조절이 관계에 끼치는 파동은 꽤 크기에 서운한 당사자도 서운케한 상대방도 첨예한 감정줄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넘어지지 않는다.



 '서운함'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당신은 내가 서운함을 토로할 때마다 감정을 그때그때 말하지 말고 만나는 날 대면으로 이야기해달라 부탁한 적이 있었다. 말론 쉬워 보이지만 당장의 서운함을 일주일 넘기고서야 '사실, 저번주 화요일에 말이야..' 하며 물꼬를 트는 게 희한하게 편히 적응되지가 않았다.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데이트할 때 불현듯 떠오른 지난주의 서운함을 말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그런지 혼자 애써 삭인 감정을 말하기가 조금 머쓱했다. 당시에는 감정을 혼자 정리하는 게 관계에 좋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결국 특정 감정을 스스로 해소하는 과정의 반복은 그 외적인 감정 또한 공유하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표면적으로는 서운함을 말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으니 당신은 관계가 보다 나아졌다 여겼을지언정 정작 나는 감정을 혼자 정의하고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분명 연애를 하는데 갈수록 외로워지는 이유를 그땐 도통 알 수 없었다. 일명 '감정 이월'은 나와 맞지 않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애교 섞인 전화 한 통이면 날아갈 감정이 뭉치고 뭉쳐 엉켜 붙기 시작하니 생뚱맞은 외로움을 낳은 것이다. 서운함도 행복함도 그저 자연스러운 대화로 나누고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었을까? 애석하게도 당신과 나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서운함을 점점 삭이게 되었고 이따금씩 속상해서 말을 하면 어김없이 그냥 좀 넘어가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나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체 당신이 말하는 '그냥 넘어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매일 행복한 표정으로 좋은 말만 하는 상대를 원했을까?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함께일 수 없는 것일까?


 당신과의 이별로 두 가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나는 사소한 감정도 일상 대화처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를 원하고, 어떠한 부정적 상황과 마주해도 나중으로 넘기기보다 상처받고 아프더라도 함께 잘 풀어나가는 잘 싸우는 연애를 하고 싶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책에서 한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모든 대화에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문장을 마음으로 더하면 상대를 보다 넓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평생을 다른 사고와 경험으로 살아온 타인이 만나 한데 버무려지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역시 다르다고 고개를 저으며 서로를 밀어내기를 멈추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운한 사람이 갑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을 쉬이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제때 박멸하지 않으면 점점 더 나쁜 쪽으로 변형되기 마련이기에.


 서운한 오늘, 그래 당신도 마땅히 그랬을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이해해 보자. 서운케한 오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속상했겠다며 다독여주자. 함께 직면한 상황에 두 손 붙잡고 풀어나가자. 극한 상황을 현명하게 넘기고 나면 마치 우리가 더 괜찮은 연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을 선사하기에 때론 이해되지 않더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사랑의 힘이 위대한 이유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나를 그렇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조금 더 넉넉한 품을 만들자. 우리들의 소중한 사랑을 위해.

이전 05화 05 우리 결혼할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