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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Mar 05. 2023

05 우리 결혼할래요?




  결혼. 이 짧고도 무거운 단어가 연애의 시작과 끝에 지대한 영향을 주리라 짐작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사랑해'만으로 부족할 때 '너랑 결혼할 거야'라며 수줍게 말하는, 그저 너무 사랑해서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겁 없이 미래를 말해버리는 단순히 찐득한 애정표현이라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백일 기념으로 간 피자가게에서 당신은(당신이라 표현하기 처음으로 어색한 당신이지만) 피자 한 조각을 덜어 주며 언젠가 나와 결혼을 하고 싶다 말했고, 헤어지고 반년만에 다시 찾아온 또 다른 당신은 우리의 결말은 결혼일 거라 다부지게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하물며 종로를 지나던 택시 안 묻지도 않은 기사님께 결혼반지를 맞추러 조만간 이곳에 올 거라 말하던 팔불출 애증의 당신도 있었다. 진심의 여부를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숨길 수 없는 재채기같은 감정을 귀엽게 말하는 당신들이 그저 좋았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찐득한 애정표정으로 치부했다 한들 당신들은 어쩜 하나같이 나와 이별을 했는가? 왜 지금 내 곁에 남편이 아닌 완연한 남으로 돌아선 것인가. 억울함보단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당신들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단지 막상 결혼적령기가 되어보니 그 숱한 말들이 얼마나 무게 있는 말인지 당시에 알지 못한 우리가 그저 귀엽고 때론 씁쓸했다. 처음으로 결혼이란 제도에 덥썩 뛰어들게, 부부가 되는 일상을 꿈꾸게 한 당신은 가장 최근 이별한 당신이다. 로맨틱한 날도 아니었다. 따스한 날 당신과 코스모스를 보러 근교로 향했다. 날씨는 완벽했고 차 안에 울려 퍼지는 노래마저 마음을 살랑이게 했다. 당신은 나의 손은 놓지 않고 이따금씩 꽈악 힘을 주어 잡기도 했다. 별거 아닌 일상 이야기에 까르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창 밖으로 손을 조금 내밀어보니 시원한 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갔다. 행복이 밀려왔다. 당신과 결혼을 하고 싶어 졌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매번 ’넌 나와 결혼하게 될 거야’라고 말하던 당신의 말이 실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그렇게 사랑이 떠나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생각했다. 결혼은 뭘까? 분명 결혼을 꿈꿀 만큼 사랑해도 헤어졌다면 대체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 원초적이고도 한없이 부정적으로 내리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막상 결혼에 유력했던 상대가 사라지고 나니 이상하리만큼 결혼이 더 하고 싶어 졌다. 결혼에 관심도 없어하던 친구들이 수줍게 청첩장을 내미는 날이 늘어났고 여기저기서 웨딩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안 올 것 같던 삼십 대가 내게도 왔고 비혼주의가 아니고서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평하게 있다가 영원히 혼자 남아 재가 될 것 같은 무서운 상상도 하게 되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나 이런 생각까지 했다니까?’

한 바탕 자지러지게 웃고 당신의 품에 안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으로, 나의 불안함 조급함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만남이 아닌 앞서 내가 쓴 글처럼 서로가 만날 그곳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금세 평온해진다. 사실 마음을 앞서 내어 걱정한다 하여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랑은, 인연은 그리고 결혼은 말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계절의 변화를 함께 느끼고 소소한 일상 속 행복과 슬픔을 나누며 더 뜻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 어제, 얼마 전 결혼한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결혼 생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었다. 낯선 시부모님 이야기며 아이를 언제쯤 갖고 싶은지 일상적인 이야기들. 한참을 그녀 이야기를 듣던 내게 그녀는 말했다.


 ‘그래도 이왕이며 결혼은 천천히 해 ‘


 나는 대답대신 에이드를 마시고 미소 지었다. 지긋지긋한 유부녀들 고정 멘트. 결국은 해본 자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기혼자들의 따가운 눈총이 화면을 뚫고 전해지는 느낌이다. 환상으로 똘똘 뭉쳐 철부지처럼 결혼을 꿈꾸는 나를 바라보는. 그러나 이러한 생각조차 미혼자의 특권이자 먼 훗날 건조하게 웃더라도 한참 어린 친구들을 공감 할 넉넉함이 되리라 투머치 합리화를 해본다.


 피자 한 조각을 건네주며 수줍게 ‘결혼하자!’ 말하던 풋내 나는 당신의 마음을 시작으로 누군가의 동반자가 되어 한 남자의 마지막 여자가 되고 나면 이 긴 사랑의 스토리도 한 권의 책처럼 느껴질 것 같다. 맞아, 그때는 그랬지. 나는 그렇기에 한 페이지를 넘기며 나이가 주는 압박, 사회가 주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나의 삶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일상 속 구석구석 숨겨진 관계들이 더해져 나는 또 언제나처럼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쯤은 확언할 만큼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될 자신이 있기에. 나만의 개똥 철학과 자뻑을 안고 나답게 살아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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