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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Feb 23. 2023

03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5점)




 사랑하는 이와의 연애에 있어서 가장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에는 거뜬히 해 낼 수 있을 듯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나를 쑤시는 상대의 결점에 어느 순간 당신은 왜 그러냐며 보채게 된다. 과연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 실로 가능할까? 이별 후 새로운 사랑 앞에서 이번만큼은 해내보리라 다짐했던 내 과거를 더하여 내린 나름의 결론은 불가능이다. 또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만이 숭고한 사랑이라 단정 짓는 것도 모순이라 여겨졌다. 하물며 나 자신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평생 모르고 산 누군가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니. 발상은 아름다우나 실천은 쉽지 않다.


 서른둘, 이십 대를 넘어 삼십 대의 언덕을 살포시 걸어온 경험들이 이젠 스스로에게 정의 내려준다. 지금의 사랑이 힘들면 그저 힘든 거다. 온전히 상대를 품지 못한 과정의 결과인가 되돌아보지 말자. 적어도 매 순간 진심이었다면 조금 부족한 나라도 그게 나고 지금의 관계가 현실임을 받아들이자. 왜 우리는 분명 관계의 고통 속에서 내린 결론임에도 무수한 자책과 반성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까. 사랑의 시작은 그저 사랑했기에 가능했고 이별의 불씨 또한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불가피하게 지펴진 것뿐이다.


 그렇다 하여 앞으로의 사랑에서 이해의 영역을 배제한 그저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단 선포는 아니다. 단지 관계의 블랙홀을 헤매며 이해라는 도마 위에 무작위로 나를 올려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서운함이 많았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임에 누군가를 대할 때 배려가 긍정적인 프레임을 위한 노력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기본값이었다. 그런 내게 무심하고 건성인 당신의 태도는 때때로 서운함을 불러왔다. 연애 초, 괜찮다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이어 말하며 나를 끌어안던 당신은 헤어지는 순간에는 그냥 좀 넘어가자며 소리를 높였다. 약속을 어기고도 당당했던 당신의 샤우팅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내가 서운함을 잘 느끼는 성향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잠에 빠졌던 당신은 이미 날 놓았던 것일까? 그럼에도 헤어지고 난 후 그 당시 있는 그대로 당신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을 한동안 탓하며 고통을 주었다.


 이제는 안다. 약속을 어긴 당신도 주특기가 배려인 내가 조금 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나에게도 이미 이별이라는 옅은 불씨가 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떠한 이해로도 잠재울 수 없는 끝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나는 이 문장을 새 지우개로 빡빡 지우고 '같은 결의 사랑을 하자'라고 다시 쓰고싶다. 어렵겠지. 많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데 원래 사랑이 쉽지만은 않기에 조금 더 어려워진다 해도 겁나지 않는다. 이해받으려 애쓰는 시간도 이해가지 않은 모습을 보며 억지로 삼켜내는 시간도 한계치에 도달하면 행복을 삽시간에 희석시키는 놈이기에 나는 나를 가장 지지하는 일 인이 되어 나와 비슷한 방향으로 걷는 사람과의 시작을 꿈꿔본다.


 “우리 2시에 만나기로 했잖아. 자고 있었어?”

 “미안해. 내가 깜빡 잠이 들었나 봐. 얼른 준비할게”

 ”또 급하게 준비하지 말고 그럼 4시까지 만나자 “

 “그럴게, 이해해 줘서 고마워! 다시 한번 미안해. 곧 만나!”


 당신과의 대화가 이렇게 흘러갔다면 나는 투덜대며 화장을 고치고 당신을 기다렸을지 모른다. 각자의 이해, 각자의 입장, 각자의 마음.


 사랑은 늘 행복과 혼란의 범벅이다. 어떠한 틀 안에 반드시 사랑은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규명 지으며 나를 가두지 않으려 한다. 어떤 방식의 사랑에도 저마다의 결이 있기에 그저 꾸준히 반복할 수밖에 없다.


 마치 다음 사랑은 이보다 나을거라는 환상을 갖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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