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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Oct 26. 2023

24 어떻게 당신은 결혼을 결심했나요?




 이십 대에 결혼한 두 명의 친구는 10살 차이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어 결혼을 서둘렀고, 또 한 명은 10년을 사귄 남자친구와의 롱디를 청산하고 결혼을 했다. 열심히 축사하기만 바빴지 그들이 왜 결혼을 생각했는지 묻지 않았다. 어쩌면 10살, 10년이란 시간이 그 이유를 대변해 줬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결혼은 그저 연애의 끝에 존재하는 새로운 문이라 생각할 만큼 일차원적이었다. 연애를 하고 있었음에도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나도 오빠랑 결혼을 하면...'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십 대에 결혼은 아주 먼 나중의 일 정도로 느껴졌나 보다.


 몇 해가 지났을 뿐인데 요즘 들어 하나 둘 청첩장 받는 일이 잦기 시작하니 서서히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결혼이란 대결심을 했는지 말이다.


 '그냥 이 사람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서?'

 '다른 사람이 딱히 궁금하지 않아서?'

 '성향이 다르긴 한데 헤어질 이유는 없어서?'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 후배에게 최근에 들은 답이었다. 그녀에게 일 년 채 만나지 않은 남자친구가 있었고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다 최근 와서야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이제 진짜 진지하게 알아보는 시간들이 되겠다 싶었는데 불현듯 결혼을 전제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예정이란 소식을 전했다. 요즘 세상에 만난 지 세 번 만에 혼인 신고를 하는 커플도 있고 만나자마자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에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존재한다지만 이제야 조금씩 마음이 보인다는 상대와의 미래를 벌써 확신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적어도 그렇다면 결혼을 마음먹은 이유정도는 그럴싸하길 바랐는데 그냥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서. 어쩌면 현실적인 답일지 몰라도 그녀가 말한 이유에서 꼭 그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어 보였다. 미혼인 내가 결혼에 관한 옳은 조언을 하긴 어렵지만 내심 그녀의 말이 용감하면서 동시에 무모해 보였다. 한바탕 부모님과 울고불고 한 뒤 걸려온 전화에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보였다. 삶은 자기의 선택과 신념으로 살아가는 거지만 때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차갑게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나 말을 아꼈다.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 부모님 서운해 하실 일 만들지 말고 둘이서 내린 결정에 책임감 있게 해 나가라 말해주었다. 사실 내가 어떤 말을 해주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음을 알기에 핏대 세워 타인의 삶에 힘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응원할 뿐.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라면 저 정도 감정으로 결혼을 확신했을까? 애석하게도 나는 아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깊고 심란하게 생각하니 아직도 결혼을 못했다며 비난할지언정 내게 결혼은 '이 정도면 되겠지'라며 마음먹기엔 매번 어려웠다. 그래서 당신과 헤어졌나 싶기도 했다. 결혼이란 관계를 너무 무겁고 어렵게 해석해서 새로운 연애가 버거운가도 이어 생각했다. 때때로 누군가 내게 어떤 마음이 들면 결혼을 결심할 거 같아?라고 묻는다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건 베이스로 각자 다른 부분을 함께 맞춰나갈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거뜬히 마음먹을 거라 답하고 싶었다. 가장 행복할 때, 이제 막 사랑이 커가는 느낌이 들 때, 그럴 땐 결코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는다. 가장 잔잔하고 무의 경지에 다 달아 서로가 때론 권태롭기까지 할 때, 그때 들여다본다. 이 사람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하루 이틀 무미건조한 사이라 해서 관계가 삽시간에 틀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시간들을 통틀어 보았을 때 때론 어긋나더라도 어긋난 자리를 하나 둘 맞추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에너지를 가진 사람여야 했다.

 


 당신과 크게 싸운 날. 당신의 입장만 우두두 뱉어버리고 그런 당신을 그저 믿어달라던 그날. 당신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나를 끌어당기려 했지만 나는 그날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연애에서 종종 보이던 당신의 회피성향은 결국 타인과 타협하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부족하게했고 가장 중요한 선택 앞에서 당신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주었다. 덜컥 겁이 났다. 당신과 함께 할 수많은 나날들 중 우리의 다른 의견을 좁혀나가는 과정이 과연 순탄할까. 아니면 내가 포기하면 해결될까. 우습게도 '연애'에서는 허용되는 범위들이 '결혼'에서는 묘하게 엄격해졌다. 우스갯소리로 친한 친구는 그 시기만 잘 지났어도 이미 애 둘은 낳았을 거라며 놀리곤 한다. 나도 '이 정도면 되겠지'하며 내 삶에 당신을 받아들였어야 했나 되돌아보는 날도 있었지만 어찌 날이 갈수록 더 확고해진다. 나는 분명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인생에 정답이 어디있겠는가. 누구도 타인의 선택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각자의 가치를 만들며 살고 그 생각의 차이가 비교적 적은, 그래서 서로의 입장이 다소 이질적어도 기꺼이 맞추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가는 것 아닐까. 비혼주의도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요즘 세상에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더더욱 무수해져 간다. 그래서 우리의 연애가(어쩌면 나의 연애)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애도 안 하고(못하고) 있는데 요 근래 만나는 기혼 선배들에게 종종 묻곤 했다. 결혼 생활을 해보니 더더욱 중요하다 생각드는 것이 무엇인지.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①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낼 줄 아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

② 다정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 사람이 곧이어 다정한 부모가 된다.

③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은 예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④ 한번 결혼인데 적당해선 안된다.


 미리 들은 조언들을 '그럼 대체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마음먹어야 해?'라 묻는 후배에게 끝내 말해주지 못했다. 이미 확고해 보였기에 그녀의 선택을 부정하는 대답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섣부른 오지랖으로 앞선 상처를 줄 필요가 있는가 싶어서.


 덕분에 결혼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다. '와 나 꽤나 고리타분하네.' 대화로 잘 풀어갈 줄 아는, 다른 점을 인정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남자. 이런 대답을 로맨틱하게 들어줄 이성이 있을까 잠시 고민도 들었다. 당신이 주는 사랑이 너무 좋아서요, 당신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당신이 이유이기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와 같은 말은 곧 죽어도 못하겠다. 내게 결혼은 현실이기에.



 어제는 서른두 번째 생일이었다. 회사에서 생일날 공가를 주어 당일치기 바다여행을 홀로 떠났다. 가을 공기가 선선하니 기분을 좋게 했고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는 길, 하나 둘 물들어가는 산들이 아름다웠다. 좋아하는 양다일 음악을 주구장창 들으며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최근 선물 받은 책을 읽기도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용기 있고 밝은 아이로 자라게 해 주어 감사하다 부모님께 카톡을 보내다가 아주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여행이 주는 감수성 탓인지 정말로 이제는 꽤나 큰 나인 거 같아서 너무 감사해서였는지.


 혼자 회덮밥 한 그릇을 다 먹고 계산하러 가며 사장님께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저 오늘 생일인데 미역국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어머, 진작 말씀하시면 한 대접드렸을텐데! 축하해요!"


 기분 좋게 웃고 나와 근처 카페에 가 하염없이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도 느꼈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져 그 누구도 뚫고 못 들어오면 어떡하지 싶어서 말이다. 그 찰나 생일 축하 연락이 하나 둘 왔고 친한 선배의 카톡에 한참 머물렀다.


 '나는 셈케이 네가 네 삶을 너답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 너무 보기 좋아.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지만 인생은 내가 가장 오롯이 나 자신을 사랑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또다시 용기를 얻고 행복을 찾는 것 같더라. 지금처럼 너를 아끼며 사랑하는 시간들 속에 그 진가를 알아봐 주는 이를 만나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될 거야. 너무 예쁜 나이의 너에게 어울리는 선물 보내. 생일 축하하고 오늘 하루 잘 보내'


 선배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봐주는 선배의 시선에 더 큰 감동을 느꼈다. 어쩌면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느끼게 되는 게 우리들의 삶이기에 그 너비와 깊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지구 몇 바퀴를 돌고서야 만날 수도 있는 것이 인연이지만 선배의 말처럼 혼자의 삶 속 소중함을 알고 나면 함께하는 삶에 더 감사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따뜻한 장갑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올해는 이 장갑으로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고 내년 겨울에는 장갑 없이도 따뜻하게 잡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아, 나 작년에는 혼자 생일 보냈잖아 너스레도 떨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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