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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Oct 25. 2023

23 당신은 결국 카페 사장이 되었다




 당신을 처음 만난 곳은 수원역에 위치한 3층자리 카페였다. 미술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졸업과 취업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카페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기 위해 이력서를 넣은 지 이틀이 채 지나기 전에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큰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긴장이 몰려왔고 은은한 커피 향과 함께 포스기 앞에 선 누군가 인사를 건네어왔다. 당신이었다. 큰 키에 깔끔한 청남방. 웃으면 사라져버리는 눈. 당신은 활짝 웃으며 내게 앉을자리를 안내해 주었고 이어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당신은 나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자신의 여자친구가 될 줄 알았다는 자신감을 후에 자랑스레 말했지만 이제 와서 말하자면 나는 당신을 처음 보자마자 ‘와 저런 키는 진짜 키 큰 여자 만나겠다’라는 멋없는 생각에 멈추어있었다. 160센티 언저리인 내가 당신의 여자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내 주변 지인들 중 당신을 기억하는 이는 많다. 나의 가장 찬란한 이십 대의 대제목 중 하나로 어찌나 익숙하면 다음 남자친구에게 당신의 성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세상에나.


 당신은 참 매력적이었다. 17살 첫 키스를 까먹게 할 만큼 당신과의 키스에 매료되어 공원 벤치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와 한번만 더 하자’라는 당돌한 멘트도 자아내게 했으니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최악의 기억도 많다. 길거리에서 소리치며 싸우기도 했고 갓 나온 음식 앞에서 싸워 김이 가시기도 전에 각자 집으로 가는 어이없는 날도 있었다. 독립심을 키우고 싶어 용돈을 자체적으로 끊어 지갑사정이 어렵던 당신이 천일 기념 선물, 아니 편지한 장도 없이 만나 내가 선물한 향수를 받아 들고 한참을 서있다 한 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이거 반품하면 안 될까?‘ 광교 호수공원에서 떠나가라 울었다. 내 사랑은 왜 이리도 힘드냐고 따져 물으며 당신에게 소리쳤다. 이미 그 향수는 빈 통이 되었겠지만.



 당신은 커피를 사랑했다. 여행을 가도 대개 여자가 찾는 카페 맛집은 당신의 영역이었고 매번 마실 때마다 무슨 맛이 나는지 물었다. 맛있다, 맛없다가 아니다. 종이맛, 연필맛, 나무맛.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낯선 물체의 맛을 상상해야 했다. 당신이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면 휴, 잘 말했다 라며 안도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나 또한 행복했다.


 당신은 먼 훗날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 했다. 여러 카페에 근무하며 경험을 얻고 결국 자신만의 근사한 카페를 차리고 싶다 자주 말했다. 당신의 팔배게에 누워 나는 당신의 콧구멍을 간지럽히며 당신의 꿈을 듣곤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당신이 꼭 그 꿈을 이루길 바랐다.


 “내 카페에는 셈케이 너의 그림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 메뉴판도 셈케이 네가 해줘”


 재능 기부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당신의 말에 어이없어 크게 웃어버렸다. 사실 대화 하나하나 다 기억나진 않지만 다가올 미래를 꿈꾸며 설레하는 당신의 표정을 사랑했다. 그래서 나도 조심스레 당신의 꿈에 녹아들었었다. 어쩌면 정말 당신의 카페에 내 그림들이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5년 하고도 수개월 더 지났다. 수원에서 서울로 이사 하던 날 더이상 당신을 우연히라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괜스레 서운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당신이 서서히 옅어져 갔고 새로운 사랑들로 덮혀져 가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당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예쁜 카페의 사장이 되었다고. 그 근방에서는 꽤 유명하다며. 웃음이 지어졌다. 내 지분 하나 없는 카페에 마치 내 영향력이 있었다 착각이 들만큼 기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그림 한 점 없는 카페, 내 손길 하나 닿지 않은 카페, 그러나 내가 아주 많이 사랑했었던 나의 젊은 날 당신의 카페. 커피는 안 먹어봐도 맛있겠지. 이쯤 시간이 흐르니 그런 상상도 해본다. 당신이 일하는 카페에 우연히 들러 당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구구절절 그간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씨익 서로를 보고 웃어주는 그 미소 하나로 모든 말이 대신 될 거라고.


 축하해. 그리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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