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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Oct 24. 2023

22 그래도 함께 있자




 어떤 말도 장담할 수 없는 이유는 그토록 호언하던 신념도 막상 내 사연이 되어보면 몇 걸음 안가 가뿐히 무너지기도 하기에. 가장 단단하게 여긴 많은 것들이 두들어보니 텅텅 빈 깡통에 불과한 적도 있었다. 미루고 미뤄 둔 먼지 가득한 책 속 고작 한 문장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기도 했고. 그렇게 깨달은 사실은 삶도 사랑도 힘주며 아등바등할 것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이래야만 한다는 누적의 규칙들을 덜어내고 가장 중요한 핵심만 품으려 했다. 결국은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가기 마련이기에 가능하면 험난하지 않은 길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학창 시절 반에서 중간 조금 위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뛰어나게 잘해서 칭찬을 받지도, 남아서 나머지 수업을 들을 만큼 부족하지도 않은 그래서 때때로 둘 중 하나였어야 했나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 어쩌면 내 사랑들도 그랬던 것 같다. 라디오 사연을 보낼 만큼 특별하지도 남들의 한숨을 자아낼 만큼 무모하지도 않았다. 평범함이 때론 위대함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더 이상 사랑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이는 화려함이 아닌 사랑과 이별의 반복 속에서도 나만의 굵직한 심지 하나를 깊게 심어 단단한 나이고 싶어졌다. 잦은 다툼에 쉽사리 끝을 바라보지 않고 그 사랑의 가치를 들여다볼 줄 아는 시선의 심지를. 사소한 배려에도 더 큰 감동을 표현할 줄 아는 마음의 심지를. 그러한 단단함들이 중심이 되어 매번 삐그덕 되었던 한계구간에서 더 나은 사랑으로 커가고 싶어졌다.



 사랑을 시작하고 벅찬 하루들을 함께 보내다 보면 추억과 시간이 겹겹이 쌓여 견고한 관계로 성장해 간다. 그 관계의 형성은 가시적으로는 안정적인 커플로 비치지만 그 시기에 다 달으면 두 가지 무게의 추를 갖게 된다. 조금 더 이해받고 싶은 이기심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해심. 이 관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똑똑한 연애는 커져가는 나의 이기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대의 이해심에 곱절 고마워해주어 그 일률적인 관계의 진화를 특별하게 담을 줄 아는 연애다. 흔히들 관계가 가까워지면 본인의 바람이 그다지 큰 크기가 아니라 합리화하며 되려 상대에게 탓을 돌리곤 한다. 나는 딱 그 시기에 나만의 심지를 심어두려 한다. 그곳까지 함께 올라간 나의 당신을 탓할 시간에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 또한 그런 나의 사랑을 알아봐 힘겹게 잠재운 내 이기심을 토닥여 주는 그런 사랑을.


 최근 재밌게 본 프로그램 [MBN 돌싱글즈 4]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출연자의 멘트를 접했다. 서로를 선택 후 동거 생활을 이어가며 마주한 다른 생활 라이프에 적잖이 놀란 리키는 최종선택 전 하림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난 스트레스받을 거 같아. 솔직히 이렇게 맨날 지저분하면. 하지만 내 말의 요지는, 걱정은 되지만 그게 큰 걱정은 아니야. 부딪힐 테지만, 그런데 그때 가서 부딪히면 될 거 같아. 완벽한 건 없잖아."


 이 말이 내겐 꽤나 로맨틱하게 들렸다. 물론 상대 하림은 본인의 상황을 잘 알면서 날것의 현실을 직시케 하는 리키에게 야속함을 느낀다. 리키라는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없지만 나는 늘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중 일부였기에 꽤 당황했다. 그리고 하림의 반응에 한번 더 놀랐다. 이토록 사람은 다르구나 싶어서.


 헤어짐 앞에서 흔히는 하는 말. '우린 안 맞는 거 같아.' 앞서 피력했듯 나는 인정하는 과정을 중요시 생각한다. 우리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질타하더라도 마치 그 변화는 너만의 몫이 아닌 우리가 함께 바꿔가야 할 몫이라고 말해주는 말. 완벽할 수 없기에 이 사랑의 부족함을 함께 채워가자는 말.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해 와 맞먹는 정도의 말로 내겐 와닿았다. 물론 사랑의 유효기간 그 끝자락에 서있다면 애써 노력하지 않는 편이 낫다. 사랑은 노력이 아니라는 노래가사처럼 말이다. 나의 모든 개똥 철학은 '우리는 아직 서로를 놓지 못한다'라는 의지에 전제한다.


 사랑에 임하는 자세가 건조해지는 것이 아닌 사랑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선명 해지는 것이다. 화려한 장미꽃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을.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꿈꾸는 달콤한 대화보다 나의 나약함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마음에 기대어 고맙다 속삭일 줄 아는 솔직함의 힘을.


 그래서 내 사랑이 어쩌면 조금씩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애당초 내게 쉬웠다면 나는 글을 쓸 이유조차 찾지 못했을 거다. 조금씩 더 나의 모양을 갖추어 가는 시간들이다. 나와 같은 모양이 아닌 우리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바탕이 된 사랑, 어쩌면 그런 사랑이야말로 더 오랜 시간 가치 있는 관계로 나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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