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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Oct 20. 2023

21 ‘변하지 않았으면’했지만 변하는 것 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월급 아껴가며 모은 비상금으로 당신을 위한 근사한 선물을 샀고 본가에 가야 했던 그날 위로가 필요하다던 당신을 위해 엄마께 거짓말을 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주려고 숨겨두었던 어린 날의 일기 한 페이지를 몇 번이고 만지작 거렸고 당신과의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비가 내리는 밤 당신 집 앞에서 늦은 당신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며 기다려도 봤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시간 당신이 변했다고 줄곧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었는데 결국 돌이켜보면 내 사랑을 위해 내가 한 숱한 행동들을 마치 당신을 위해서였다 합리화하며 우리의 끝의 무게를 당신에게 돌리고 있는 비겁한 나를 찾아냈다. 받은 사랑은 하나도 없는 양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부들대던 떨림을 멈추고 꽉 쥔 주먹을 풀며 되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을 없다고.


 애타게 갖고 싶었던 어떠한 것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서서히 열망도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사람 간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변해갔고 또 상처받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 두려워했다. 그러나 몇 번의 두려움과 맞서고 나면 깨닫게 된다. 사람은 본래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관계라는 게 내가 온 정성 다해 보듬어도 깨질 때가 있고 나밖에 모르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어도 힘껏 안아줄 때가 있다는 것을.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면 우리는 왜 날이 추워지는지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저 얇은 옷을 넣어두고 따뜻하고 포근한 옷을 준비한다. 한 잎 두 잎 물들어가는 나뭇잎과 쌀쌀해진 가을바람을 두 눈 감고 만끽한다. 계절이 이렇게 또 변하네 하며 말이다. 사랑에도 그런 자세를 가지기 위해 늘 노력한다. 우리의 사랑이 견고하고 깊었지만 인연이 머지않아 끝이 나려나 보다. 함께한 계절이 행복했다면 기꺼이 변해가는 당신과 나를 받아들이는 내가 되기 위해. 물론 진정으로 사랑한 이의 맥 빠진 시선을 태평하게 관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감정의 영역에 너무 오래 아파하지 말자는 말이다.

 


 조금씩 인생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된다. 강력한 피력보다 인생사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유해지려 애쓴다. 미간을 찌푸리고 떠나간 이를 저주해 봤자 돌아오는 건 슬픔뿐이더라. 왜 사랑은 나를 자꾸 성찰시키는 것일까. 지나간 사랑을 복기하며 나의 부족했던 부분, 사랑스러웠던 순간, 당신과 함께였기에 고마웠던 추억, 그래서 결국 앞으로 꿈꾸는 사랑의 모양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이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자욱들이 서서히 옅어져 오롯한 나로 돌아오는 시간 속 성장통. 그래서 결국 가을이 왔다.


 또 변할 것이다. 따뜻한 봄이 올 것처럼 내가 사랑할 당신의 뜨거운 열정도 언젠간 익숙함에 미지근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바라는 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당신이 아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도 내 곁에, 서로의 곁에 끝끝내 함께 있는 것이 내가 바라는 사랑이다.


 조용히 따뜻한 가을 옷을 꺼내는 오늘이다.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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