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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Mar 16. 2022

책상에 앉으면 시작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

 오늘은 2022년 3월 16일이다. 내가 이 브런치 계정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날은 2021년 12월 6일. 그러니까 세 달 넘는 기간 동안 난 어떤 글도 발행하지 않았다. 시간은 참 빠르다.      


 도대체 세 달 동안 나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도대체 뭘 하느라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세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는 한가득이다. 그 사이 난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했고, 옆 팀 직원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뜬금없이 해외 출장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 덕에 몇 주를 격리당했고, 격리 해제 다음부터는 업무가 바빠서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수였다. 그 사이 연봉협상에 실패했고, 분노에 몸을 가누기 힘든 날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성의 끈을 붙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를 다니는 게 힘들고 화가 나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 동안 마음도 몸도 녹초가 되었고 집에 있을 때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우울함은 좋은 핑계가 되었다. 어쨌든 회사를 다니며 돈은 벌고 있으니까 그걸 위안 삼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기 시작했다. 

 글도 쓰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심지어 친구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한번 그렇게 이불 속에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뭔가를 할 시간이 생겨도 그 이불 밖으로 나올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긴, 이불 밖은 위험했다. 이불 밖의 세상엔 배신과 거짓이 가득하지 않던가? 

 내가 열심히 해서 만든 열매를 허락도 없이 따 먹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그 열매가 처음부터 본인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혼자 전전긍긍하던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해 이불속은 너무 안락했다. 누워 있으면 몸이 노곤해지고 따뜻했다.     


 난 그렇게 이불속에 있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 참 이상했다. 브런치 구독자 한 명, 댓글 한 줄에 그렇게 기뻐했으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손에 놓은 것이 바로 글쓰기? 나라는 사람, 참 이상했다. 


  생각해보면 글 쓰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내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해야 하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다듬어야 하고, 그 글을 읽어준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들여야 했다. 눈에 띄는 성과가 빨리 찾아오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안 그래도 피곤한 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그렇게 제일 먼저 내가 던져버린 것은 글쓰기였다.      


 근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을 때, 내가 가장 신경 쓰였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내가 글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놔버렸으면 편하고 좋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불편할까? 이제 봄이 와서 더 이상 이불속의 따뜻함이 기분 좋지 않은 탓일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그래, 생각해보니까 이제 힘든 것들도 거의 마무리돼가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래? 퇴근하면 이불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영상이나 보다가 새벽에 잠들고... 이러는 동안 누군가는 또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작가가 되고 나 빼고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안 그래?      


 답은 뻔했다.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 

 근데 쉽게 다시 시작할 수가 없었다. 글을 쓰려면 또다시 주제를 생각하고 정리하고 다듬고, 짧은 글을 쓰는 데에도 삘을 받았다는 조건 하에 한 시간 이상은 시간이 필요한데, 아니. 한 시간 투자해서 글을 결국 완성하면 다행이지.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휘발되는 글과 생각이 얼마나 많은데. 시간을 투자해서 결국 남는 것도 없이 끝났던 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시 시작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이불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예전에 어떻게 그렇게 글을 뽑아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기운이 다 빠져버린 나라는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그냥 책상에라도 앉아볼까. 내가 쓰던 글들은 모두 책상에서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그냥. 그냥 책상에 앉아볼까?


 책상에라도 앉아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맘이 좀 편했다. 책상에 앉는 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근데 지금 이렇게 책상에 앉는 게 정말 힘들었다. 책상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게 벌써 2주가 넘게 지났는데 2주 만에 책상에 앉았다. 그래도 책상에 앉으니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책상에 앉으면 그래도 시작할 수 있다. 컴퓨터를 켤 수도 있고, 몇 글자 끄적이다가 글 한 편을 완성할 수도 있다. 비록 그게 내가 왜 지금까지 글을 잘 쓰지 못했는지에 대한 핑계로 가득 차 있더라도 세 달 동안 하지 못했던 걸 할 수 있다.


ps. 앞으로도 열심히 책상에 앉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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