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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턴생활의 4할_(2)

[시작] 바보 같았던 일을 고백하자면

by 하이히니

지금까지는 내가 억울한 것들 위주로만 말했지만, 반대로 나 또한 팀원들을 곤란하게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면, 나는 원래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정 기복도 심한 편이다. 게다가 울보였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영화나 드라마도 심각한 내용이나 스트레스 요인이 있을 만한 것들은 애초에 피해야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부산행, 괴물, 명량, 국제시장처럼 뭔가 감정에 기복을 줄만한 영화는 아예 보지 않았다. 디즈니에서 나온 주토피아, 라푼젤, 인사이드 아웃, 토이스토리 등의 영화도 내 눈물을 뽑아내기에는 충분했다.


공공기관에서 하는 업무랑 (애초에 잘 맞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맞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일에 대해 상당히 의욕적이었고 인턴인 것을 감안하면 일에 대해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어를 전공했다는 그 사수가 시키는 일이면 모든지 했다. 그는 실제로 외부에 공고를 낼 때, 사업 담당자로 내 이름을 적어 낸 적이 많았다. 권한은 없고 책임과 부담만 가지고 있던 난 쓸데없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사이가 소원해졌다.


"현수야. 근데 회사 얘기 좀 그만 하면 안 돼? 난 아직 취업도 안 했는데, 맨날 알지도 못하는 얘기하고..."

"야...좀 들어주면 안 돼? 내가 얼마나 힘들면 지금...너한테 이런 얘기까지 하겠어?"

"하...진짜 듣는 나도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그렇지!"

"그럼 나 혼자 돌아버리라는 거야 뭐야? 너 지금 화냈어?"

"아...진짜. 내가 듣고 위로를 해줘도 맨날 똑같은 얘기 또 하잖아. 그럴 거면 그만둬."

"뭐? 말 다했어? 야!"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전화로 대판 싸움이 붙었다. 내가 남자친구에게 주야장천 죽는소리만 해대니까 그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격정적으로 전화로 싸우고 출근한 다음 날.

출근을 해서 일에 집중하려고 해도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분이 차올랐다. 결국 그 감정을 참지 못하고 잠시 화장실에서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근데, 팀의 남자 선배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눈물을 흘리느라 자리를 비웠던 시간은 15분 남짓. 게다가 그 선배는 평소에 내게 업무 지원을 부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일을 시키려고 날 찾다가 15분 이상 기다리니까 화가 난 것이었다.


“현수씨, 도대체 어디 갔다 왔어요? 자리를 비울 거면 사람들한테 말을 하든지.”

“잠깐...일이 있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자리를 그렇게 비웠어요?”


나는 이때 억울함이 스멀스멀 밀려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랑 평소에 일했던 적도 없고 15분 정도 자리 비운 것이 그렇게 죽일 일이란 말인가! 게다가 난 지금 평소보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라고...!

“무슨 일이냐면...”


남자친구랑 싸워서 울고 오느라 자리를 비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던 그 순간. 눈물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수씨...지금 울어요?”

“아닙니다...”

“현수씨...”


내 눈물을 목격한 선배는 주춤거리기 시작했고 휴지 한 통을 가져오더니 내게 건넸다.

“현수씨...미안해요. 내가...아니 그게 내가 너무 바쁘다 보니까 갑자기 격해졌는지...”

“아닙니다. 제가...흡...흑...”


무슨 말을 해도 눈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그런 상태가 되었다.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계속 흘리자 선배는 본인 나름의 위로를 건네기 시작했다.

“아...이거 내가 진짜 문제가 있나 보다. 나랑 조금이라도 엮이면 우는 여자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솔직히 현수씨랑 일한 적도 없는데 뜬금없이...참...현수씨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20대 초반에 여기서 사람들이랑 일하고...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생각하면 참 철도 없고 그랬는데...”


그가 해주는 말을 듣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데에 꽂히게 되었다.


20대 초반? 23살은 20대 중반인데? 내 기준에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까지는 20대 초반이고 시옷 받침이 들어가는 스물셋부터 스물여섯까지는 중반, 비읍 받침이 들어가는 스물일곱부터 아홉까지는 후반이었다. 이 와중에 갑자기 이런 게 신경 쓰이는 게 난감하긴 했지만, 스물셋은 이십 대 중반이라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사실 그래서 20대 초반에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현수씨 볼 때마다 참 잘해주고 싶었는데...”

20대 초반이 아닌데...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생각하면...진짜 철없었는데..."


무시하려고 해도, 그는 자꾸 '20대 초반'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선임님...근데...”

“어. 현수씨 편하게 말해.”

“스물셋은...흐흐..흡...흑...20대...흐..흐으...윽...초반이 아니라...시옷 받...침이라 흐..읍...흑...주...주..흡...중반...이예요..흑흡...흡....”

“뭐라고?”

“주...중반이라고요!!!!!!!!흐으으읍...”


눈물을 겨우겨우 참고 있던 나는 쓸데없이 스물셋은 20대 중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려다 사무실 한복판에서 오열을 하고 말았다. 그 선배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사무실에 있던 온갖 휴지, 초콜릿 등을 내 앞에 가지고 왔고, 결국엔 나를 데리고 카페에 갔다.


그 일로 인해, 그는 인턴을 울게 한 희대의 나쁜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공교롭게 이 선배와 나를 포함해서 팀원 4명이 외부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현수씨, 우리 배차해서 갈 건데. 배차 신청하고 키 받아 올래요? 운전할 줄 알아요?”

“네. 면허 있습니다.”

“그럼 현수씨가 운전할래요? 나 며칠 동안 운전을 너무 많이 해서...같이 가는 선배들한테 시키긴 좀 그렇고...”

“네. 알겠습니다.”

“운전할 수 있는 거 맞죠?”

“네. 면허 있어요.”


‘네. 면허 있기만 합니다. 몇 년 전에 면허를 따긴 했지만, 시험을 보면서도 사고를 낼 정도로 운전을 잘 못했고, 몇 번이나 재시험을 봐서 겨우 붙었습니다. 근데 시험 봤을 때 사고 난 게 자꾸 생각나서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습니다.’라는 내 속마음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 당시에 내가 운전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왼쪽에 브레이크가 있는지 엑셀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배차 신청을 하고 키를 받아왔지만 내가 그 키로 할 수 있는 일 따윈 없었다. 팀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급히 핸드폰으로 엑셀 위치, 브레이크 위치, 시동 거는 방법, 전진하는 방법, 후진하는 방법 같은 것들을 검색해봤지만 짧은 시간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다 찾지는 못했다. 엑셀과 브레이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운전석에 앉게 되었다. 팀원들은 차 안에서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시동을 걸어보았고 운 좋게 시동 걸기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대체 엑셀과 브레이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선임님...정말 죄송한데.”

“어.”

“혹시 이거 하나만 알려주실 수 있어요? 왼발이 엑셀이에요 아니면 브레이크예요? 오른발로 하는 거였나요?”


오른발, 왼발 소리에 차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현수씨, 장난이지?”

“아닙니다. 그것만 알면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기억이 안 나서.”


또다시 차 안엔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명원아, 그냥 네가 운전해라.”

“네. 현수씨...자리 바꿉시다.”


결국 나와 남자 선배는 자리를 바꿨고, 나머지 선배들은 ‘잘못하다가 죽을 뻔했다.’면서 명원 선배를 갈구기 시작했다.

“아니, 현수씨를 얼마나 갈궜으면 저 상태로 운전을 한다고 해?”

“죄송합니다. 현수씨...앞으로는 영원히 면허 있다는 말을 하지 마세요...영원히요...그냥 없다고 하세요...”


그 뒤로 나는 정말 (현재까지는) 영원히 면허가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긴 하지만, 이것도 한 때인 어리석은 열정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비슷한 이유로 3~4명의 남자친구와 이별을 경험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의욕적이고 모든 일을 책임지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많은 일을 떠맡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정작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챙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사회초년생일 때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 준비생이거나 대학생이었고, 그런 친구들에게 회사 욕을 하는 건 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난, 내 힘든 마음을 모두 남자친구에게 쏟아부었다. 처음엔 이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들어주던 남자친구도, 점점 이 상황을 괴로워했고 그런 일로 다투다 결국 이별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오래전에 헤어진 남자친구들이 그립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은 계속하게 된다. 처음 회사를 다니다 보면 회사라는 곳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너무 크고, 나에게 주는 영향이 너무 크다. 하지만, 그 와중에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계속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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