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도 아직은 '어른이' 야
나에게도 가족이란 이름에 대한 기억이 있다.
두발 자전거를 막 배우기 시작했고 소꿉놀이보다 동네 대장놀이가 더 재밌어지기 시작하던 무렵.
엄마와 나, 그리고 새아빠.
이렇게 세 식구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잠시동안 함께했다.
어느 날 새아빠와 단 둘이 소래포구로 엄마의 심부름을 갔던날이다.
시장입구에 도착 하자 그는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사탕하나를 입에 물려 주고는 그 큰 키로 뚜벅 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품에 안긴채 거대한 천막안의 들어서니 대나무처럼 빽뺵히 들어선 가게들과 큰소리로무언가를 외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새빨간 큰통에 담긴 투명했던 작은 새우들 과 언젠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말했던 오징어 젓갈 그리고 그 옆에 주르륵 늘어져 있는 생선들 까지.
한곳에 어우러진 모든 것들이 기묘해 보였다.
그리고 이 날의 비릿한 해산물들의 향과 입안의 담긴 사탕에 달콤한향이 그러모아진 유별난 기억의 향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건 뭐에요ㅡ, 저건 뭐에요ㅡ,“
어린아이의 계속되는 질문이 귀찮을법 한데도 그는 한번도 대충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건 먹으면 키크는거, 그건 아빠가 좋아하는거 ’ 라며 나를 성심껏 놀려주었다.
그렇게 한손에는 검은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나를 품에 안은채 시장을 누비며 항구까지 구경시켜주었다.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갔고 그는 날 보며 심부름은 다했으니 엄마가 좋아하는 회나 사가자며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그 후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언제부터 기다린건지 멀리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심부름을 다녀온 짧은 시간도 그리웠는지 차가 멈추자 마자 나는 문을열고 폴짝 뛰어내려 엄마에게 안겼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제대로 엄마를 보니 낮에는 하지 않았던 화장을 곱게 하고 옷도 예쁘게 입고 있었다.
”엄마 너무예뻐! 우리엄마 너무예쁘다 !“
헤실헤실 웃으며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같이 미소지었다.
뒤이어 양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온 새아빠도 엄마와 나를 보며 그만의 특별했던 해적같은 맑은 웃음을 짓고있었다.
당시 두분 사이에 무슨일이 있어 헤어져야 했는지 어렸던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나에게 새아빠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모르고 살던 삶에서 처음으로 그 뜻을 알려준 사람이였고
어렸던 내 기억속에 엄마가 웃고 있는 순간을 가장 많이 담아준 사람이기에.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던 세사람이 만나 가족이 되어 잠시나마 서로를 보듬어 주었던 시간이였다.
가끔 떠올리곤 한다.
그때 내 입에 물려주던 사과맛 사탕과 생선 이름을 알려주던 그 아저씨.
아니, 새아빠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나’라는 아이를 기억할지, 당신에게도 내가 가족이 되어주었는지.
소꿉장난 같던 그시절 당신이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