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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Oct 13. 2023

인간 X(3)

 기지로 돌아온 X는 차르타의 시체를 조사했다. 겉으로 드러난 외상은 없었고 땅에 묻었던 다른 차르타들에게도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엉덩이 쪽 부분에 붉은 반점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포식자에 의한 죽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죽은 차르타의 아이디를 확인해보니 아직 수명이 한참 남아있어 자연사가 아닌 것도 확인되었다. 이들은 다른 원인으로 죽은 것이다. 

 다음으로 빗물 웅덩이에서 받아 온 물을 조사했다. 현미경으로 물의 성분을 살피다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미세한 생물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움직임으로 보아 미지의 생물은 살아 있었고 그 수도 무척 많았다. X는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슈퍼컴퓨터에 입력하고 생물의 정체를 물었다.      

[바이러스]     

 바이러스? X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를 제시한 챠크리티에게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바나스파티, 차르타, 마린다, 마누쉬 등 생명에 기생하고 증식이 가능하며 생명체에게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     

 챠크리티가 내놓은 설명문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르타 떼죽음의 원인이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여태껏 이런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으로 몸이 굳어졌다. 컴퓨터 입력 테이블 의자에서 일어나 여기저기를 서성이며 생각을 집중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물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사건 현장에서 마누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차르타들이 죽기 전 이 지역에만 비가 내렸어요. 이 지역은 좀체로 비가 오지 않는 곳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X는 서둘러서 챠크리티의 기후 조절 프로그램의 실행 로그를 살폈다. 프리티비의 기후는 슈퍼컴퓨터 챠크리티에 의해 통제된다. 사건 당일 챠크리티가 실행한 기후 프로그램에서 어떤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천수만 줄의 실행 로그를 빠르게 훑고 지나가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로그 하나를 발견했다.  

 ː

CHACRITI> DO SUN   TEMP. 25°C SECTOR AA:ZZ 09:00~13:00

CHACRITI> DO WIND  TEMP. 23°C SECTOR AA:ZZ 13:00~14:00

CHACRITI> DO CLOUD  TEMP. 22°C SECTOR AA:ZZ 14:00~14:30 

DR. S> DO RAIN  TEMP. 21°C SECTOR AB:AC 14:30~14:50 

CHACRITI> DO SUN TEMP. 23°C SECTOR AA:ZZ 14:50~17:00

CHACRITI> DO WIND  TEMP. 22°C SECTOR AA:ZZ 17:00~20:00 

 ;

 모든 기후 조절의 명령은 챠크리티가 내렸지만 딱 한번 챠크리티가 아닌 누군가에 의한 개입이 발견되었다. 그 명령 주체는 DR. S 라고 쓰여져 있었다.

DR. S> DO RAIN  TEMP. 21°C SECTOR AB:AC 14:30~14:50 

특이한 것은 기후조건 RAIN이 적용된 SECTOR가 프리티비 전 지역을 뜻하는 AA:ZZ가 아니라 특정 지역인 AB:AC로 국한되었다는 것이다. 

AB:AC SECTOR는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다. 강수 시간도 14시 30분에서 14시 50분으로 20분만 한시적으로 비가 내렸다. 이것은 사건 현장에서 마누쉬가 의심스럽게 제기했던 말과도 일치했다.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시간만 비가 내렸고 그 빗물을 마신 차르타들은 죽었다. 그렇다면 비를 통해 바이러스가 이 왕국에 유입된 것이다. 도대체 DR. S는 무엇이며 왜 프리티비에 개입한 것일까? 

 갑작스레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X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기로 했다. 프리티비에 외부 세력이 간섭한 사건도 밝혀내야 할 중대한 문제였지만 우선 바이러스로 인해 집단 죽음이 발생한 일부터 해결하여 똑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했다.

 슈퍼컴퓨터로부터 바이러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다운받아 조사했다. 그리고 차르타들의 죽음이 감염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감염”이란 것은 프리티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이다. 

죽음의 원인이 또 하나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원인은 보다 심각하고 위험한 것으로 프리티비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X는 개체수 감소를 위해 자연사를 도입한 것과는 반대로 갑작스런 떼죽음을 막아 개체수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시금 챠크리티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체가 바이러스의 예기치 못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다양성의 도입]     

다양성의 도입이라고? 챠크리티가 내놓은 답을 되뇌며 생각에 잠겼다. 챠크리티는 왜 이런 답을 내놓았을까? 떼죽음을 당한 차르타를 포함하여 프리티비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종이 같은 한 동일한 개체들이다. 챠크리티가 제시한 다양성과는 반대로 획일적이다. 예를 들어, 초식자인 차르타 개체수는 수없이 많지만 모두 같은 형질을 지닌 하나의 차르타이고 이것은 인간종인 마누쉬에게도 해당된다. 얼마 전 X는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죽음을 체험하는 실험까지 했었다. 

‘개체들의 형질이 동일한 것은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바이러스가 어떤 종을 공격하여 감염시킬 때 그 종이 가진 획일성은 생존확률을 낮추게 되는 것일까?’ 

‘챠크리티가 내놓은 답은 개체 간의 다양성을 확보하여 바이러스의 감염에 대응하라는 뜻인가? ’

 팔짱을 낀 채 짧은 거리를 왔다 갔다 서성이며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어 나갔다.

‘개체 간 다양성이 확보되면 적어도 동시에 떼죽음을 당하는 비극은 발생하지 않겠군... 어떤 녀석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수 있지만 형질이 다른 또 다른 녀석은 살아남을 수도 있을 거야.’

 그의 서성이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렇다면 다양성은 어떤 방법으로 확보할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서성이던 발걸음이 딱 멈추었다. 

‘복제의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단순한 자기 복제로는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어!’    

 



2050년. 서울에서 떨어진 한적한 외곽 도시.

송 박사는 자신의 서재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손에는 종이쪽지 하나가 들려있다. 서재는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책상 위에만 스탠드 불빛이 내리비치고 있어서 연극무대 조명이 한 곳만 비치듯 가운데 부분만 동그랗게 밝히고 있었다. 책상 뒤의 벽면을 포함해서 사방은 모두 책장으로 둘러싸였고 책장 안에는 책들이 빈틈없이 꽂혀 있었다.

 손에 들린 종이쪽지 위로 스탠드 불빛을 가져와 비추었다. 쪽지에는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과거에 씌어진 것처럼 색이 바래 있었다. 두어 번 반복하여 읽고 나서 책상 위에 놓인 세 개의 상자 중 가장 왼쪽 상자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각각의 상자 앞면에는 왼쪽부터 ‘실험 예정’, ‘실험 중’, ‘실험 완료’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실험 중”이라는 표지가 붙은 상자에도 서너 장의 종이쪽지가 들어 있었다. 송 박사는 피곤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몇 번 문질러 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옆벽을 막고 있는 책장으로 다가가 두꺼운 원서 한 권을 빼냈다. 책의 제목은 ‘Similarity and Simulation’이었다. 윗옷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가운데 소파로 와서 책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털썩 주저앉았다. 

“음...특이점이 문젠데...특이점을 찾아야 그 시점에 Y를 투입할 수 있지”

그는 혼잣말을 지껄이며 두꺼운 책을 열어 이미 접혀 있는 부분을 펼쳤다. 접힌 부분이 닳아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번 찾아 읽은 것 같았다. 안경을 고쳐 쓰고 손가락으로 줄을 짚어가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멈추었다.

“음...그래 여기 있군...그렇지. 그렇다면 Y를 조만간 투입해야 시간적인 상사(相似)가 적절하겠어”

그는 원하는 것을 찾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접어 책장 위에 다시 꽂은 후 돌아섰다. 책장 옆에는 다른 방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었는데 그 문 상단에는 “GARDEN”이라는 방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는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더니 GARDEN 속으로 사라졌다. 문 옆에는 아까 읽은 종이쪽지가 들어 있던 작은 캡슐이 놓여 있었다. 캡슐은 길이 30cm, 굵기 10cm 정도의 어뢰형 모양이었는데 캡슐 상단에 ‘타임캡슐, 2025년’이라고 붉은 매직으로 아무렇게나 씌어져 있었다. 책상 아래쪽에도 비슷한 모양의 캡슐이 서너 개 뒹굴고 있었다. 모두 붉은 매직으로 연도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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